매거진 걷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의 이야기

Ala Archa National Park, Kyrgyzstan

by Yule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에 온 지도 어느덧 1년 5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에겐 친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을 소개할 땐 " 끝에 스탄이 붙는 중앙아시아 내륙 국가 중 하나인데..."라고 말로 시작하곤 한다. 그동안 다녔던 나라와는 다르게 우선 사계절이 있고,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살며, 현재 살고 있는 수도 비슈케크(Bishkek)는 오래되었지만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러시아어의 벽만 아니라면 해외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끔 깜빡할 정도이다.


이런 일상 속 이방인이 마주하는 낯선 반가움의 순간이 있다. 매일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림같이 자리한 천산산맥의 만년설을 바라볼 때이다. 날씨가 좋은 아침엔 창문 너머로 산세를 확인할 수 있고, 바쁜 출근길엔 컴퓨터 그래픽 같은 설산을 배경으로 총총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럴때마다 “그래 내가 지금 높은 산맥들이 구름과 함께 춤추는 땅에 살고 있구나."를 새삼 느끼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은 남한의 두 배 정도의 면적이지만 국토의 93%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가이다. 천산산맥은 아직도 조산운동이 계속되고 있어 산세가 험하고, 덕분에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도심에서 한 시간만 차를 타고 나가도 아름다운 설산을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근교 트래킹 코스는 알라메딘 (Alamedin) 계곡과 알라아르차 국립공원 (Ala Archa National Park)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움트는 이 계절에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다. 여행사 투어로 간단히 반나절 트래킹을 다녀오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양손 가득 음식과 텐트를 가져와 캠핑이나 야영을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평지에 모여 앉아 말도 타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해가 질 때까지 신이 선물한 이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Ala Archa National Park Alamedin


조금 이른 봄 마중 겸 3월의 중턱에 알라아르차 국립공원을 찾았다. 겨울 내내 찌뿌둥한 몸을 깨우고, 시내에 오염된 공기에서 벗어나 제대로 숨을 쉬고 싶었던 것 같다. 키르기스스탄의 산에는 대부분 등산로가 없지만 이곳은 국립공원으로 비교적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아직 남아있는 눈길에도 조금 덜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남아있었지만 가는 길마다 햇살이 녹아 있어서 걷기에는 수월했다. 4,000 미터가 넘는 능선이 구비구비 펼쳐진 산세 사이로 새하얀 모자를 쓴 봉우리들을 보고 계속 앞으로 걷다 보면 흐르는 계곡, 푸르름이 가득한 나무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다양한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서 30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첫 번째 포인트에 도착한다. 산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아빠 따라 전국의 주요 산을 다녀본 경력이 있어서 인지 그래도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다. (순례길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산들바람을 맞으며 바위에 앉아 그림 같은 산세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산하는 동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백패킹 장비를 매고 계속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혼자서도 와봐야겠다고 했더니 평지가 많아 쉬어 보이지만 자갈이나 바위가 많고 길이 험해지기에 체력과 레벨을 잘 안배해야 한다고 한다.


이제 날이 많이 풀렸으니 도심 근교를 벗어나 조금 더 멀리로도 여행을 가볼까 한다. 거칠지만 장엄한 대자연의 풍경소리도 마음에 담아보고 오래전 실크로드를 오가던 길을 따라 난 평화로운 나무숲길을 찬찬히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특별할 것 없지만 매일 오고 가는 나의 일상 속 공간들도 소소하게 소개해 볼까 한다. 일년을 넘게 살다보니 이제 제법 많은 아지트들이 생겼다. 회사 가고 운동가는 일 외에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에 조금 더 활력을 불어 일으켜 보는 일종의 프로젝트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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