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을 불면 돌고래가 찾아와 줄 거야
긴 연휴에도 꿋꿋이 집을 지키던 내가 이제 한 달의 한 번은 무조건 콜롬보를 벗어나고 있다. 나침판을 켜고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길, 언어, 종교, 눈부시게 빛나는 자연 풍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상의 삶이 녹아 있는 스리랑카, 이곳에 사는 진짜(?) 사람들의 얼굴을 잠시나마 마주하는 일은 참 귀하다. 마치 수줍음 많은 마알간 어린아이의 눈동자 속에 비친 세상을 보는 기분이랄까?
역시... 알면 사랑하게 된다.
이번에 선택한 칼피티아 숙소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해 있다. 바람이 좋아 Kite Surfing을 즐길 수 있고 바다 멀리에서는 돌고래를 볼 수 있어 관광으로도 유명하지만 아직 어업을 본업으로 하는 배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포장된 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리던 차는 마을 어귀에서부터 울퉁불퉁 흙길에 들어선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당나귀와 소들이 이곳에선 배를 깔고 누워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다. 누군가 시계태엽을 느리게 감아놓은 것 같은 이곳은 서두르지 않아도 자연의 시계에 맞춰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된다. 진정한 쉼표. 영혼을 치유하는 삶의 작은 휴식 같은 시간이다.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돌고래다. 얼마 전 엘린 켄지의 ‘거인을 바라보다’를 읽으며 고래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돌고래들의 수려하고 유연한 움직임이 마치 춤 선과 같아서 더 가까이 보고 싶다는 로망이 생겨버렸다. 이 어려운 미지의 동물은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어 진다. 우선 돌고래는 인간과 침팬지 외에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시그니처 휘파람을 자기의 이름처럼 사용하는데 이 소리는 개체마다 다르고 다른 개체를 만나거나 혼자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소리를 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건.. 자기 이름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
하지만 이 반짝이는 조약돌처럼 아름다운 생명체를 만나러 가는 길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이미 한번 같은 6인승 모터보트를 탑승해 본 지라 출발 전부터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돌고래를 보러 가려면 우선 정부 야생동물 보호국 (Department of Wildlife Conservation)에 입장료를 납부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배가 함께 움직이면 돌고래 무리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 보트 수를 제한하고 인근 해안을 보호하려는 취지이다.
보트는 먼바다로 쉬지 않고 30분에서 40분 정도 심해를 향해 나아가는데 파도에 높이와 너비에 따라 180도 디스코 팡팡을 계속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습 바닷물 공격까지 온몸으로 맞고 나면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를 외치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선장님과 항해사는 우리에게 정신 차릴 틈을 안 주려는 듯 누구보다 바쁘게 전화와 GPS로 스폿을 발 빠르게 찾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신기한 건 먼바다로 들어서면 바닷물의 색이 완전히 변모한다는 것이다. 타는 듯한 햇살을 머금은 쪽빛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하면 마치 태초의 땅이 꿈틀대듯 마그마가 지표면을 따고 흐르는 듯한 착시에 사로잡힌다. 이는 경이롭기도 한 동시에 왜 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압도하는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선장님과 항해사의 토론 타임으로 잠시 모터를 멈춘 사이 몸에 힘을 빼고 배의 일렁임에 몸을 온전히 맡긴 채 파도 부서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신체는 상당히 불편한데 내면은 나는 듯 자유롭다는 인지부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이 느낌은 발레에서 점프를 할 때와 매우 비슷하다!
뱃머리에는 항해사가 먹이를 찾는 맹수 독수리처럼 곧게 허리를 펴고 흐트러짐 없이 방향을 잡고 있다. 나의 좁은 시야엔 부서지는 파도인지 돌고래인지 구분이 안되는데 속절없이 시간만 가고 벌써 뭍을 떠난 지 두 시간이 흘렀다. 결국 같이 배를 탔던 동행이 뱃멀미를 시작하고...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육지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먼바다에서 거북이를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던데... 무려 세 마리의 바다거북이와 우연처럼 조우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인근에 돌고래 무리들이 발견되었으니 오면 볼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역시 영험한 동물들 사이에선 통하는 게 있는 걸까?
그리고 마침내 만났다. 돌고래들은 이합집산 무리를 만들었다 흩어졌다 하는데 스리랑카 영해에 사는 돌고래 정모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돌고래가 삽시간에 우리를 감쌌다. 바다 위로 쏜살같이 튀어 오르는 생동감, 원을 그리며 너울을 넘듯 물살을 가로지르는 추진력, 무리를 지어 함께 살아가며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지혜까지 어쩜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이토록 주체적이고 상호협력적이며 자신감이 넘칠까. 배가 돌고래에게 50m 이상 다가가면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손 닿을 듯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정말 황홀했던 그 찰나의 시간은 나에게 영원이 되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위험 속에서 앞으로도 돌고래 가족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걱정을 뒤로하며 그들이 먼바다에서 기쁨의 물보라를 계속 일으킬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지 않았지만 막상 땅에 내리고 나니 온몸에 지진이 난 것 같았다. 이게 육지 멀미라는 걸까? 숙소로 돌아와 꿈도 안 꾸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나온 바닷가.. 지평선 위로 풍선처럼 떠있는 석양을 보니 문득 전이수 작가의 글귀가 떠오른다.
"마음이 제일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사랑은 그 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내가 눈으로 담고 있는 천사의 날개 같은 구름, 하늘의 빛깔 그리고 바다 소금을 한 꼬집 머금은 습도까지 이 순간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언어가 아닐까 싶었다. 나도 이렇게 상냥하고 다정한 말들을 세상에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나라를 찬찬히 걷다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이 움튼다. 나의 용기가 날 안아주면 어쩌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 스리랑카에서 발견하는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발을 내딛으며 찍히는 모든 발자국은 [걷다]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