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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Mar 25. 2022

전쟁과 평화 4

레프 톨스토이


삶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으므로 살아가야 했다. 

(p271)



모스크바의 포기로 시작해 안드레이를 비롯한 여러 등장 인물의 죽음과 살아남아 새로운 세상을 꾸려나가는 피예르와 나타샤, 마리야와 니콜라이 가족의 모습으로 대서사는 마무리된다.









이 소설에서 톨스토이의 사상이 가장 많이 투영된 가문은 볼콘스키 공작가다. 톨스토이가 30대 초반에 단 한 번 만났으나 평생토록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었다는 세르게이 볼콘스키. 그는 러시아 최상층 귀족에서 입헌주의와 농노 해방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30년간 유형생활을 했다. 톨스토이는 이 인물을 소설에서 볼콘스키 노공작에게 투영했다.


톨스토이는 전쟁 시 기득권층을 들어 러시아 국민의 자기희생과 조국애, 영웅적 행위를 상상하고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의 대세보다는 눈앞의 개인적인 관심에만 몰두했다고 얘기한다. 국가의 대세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희생를 감수한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의 가장 무익한 구성원, 즉 당장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이들 뿐이었다는 것. 또한 전쟁에 참전한 장교들 역시 자기희생이라는 목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복무 중에 전쟁이 났기 때문에 참가한 것처럼 어쩌다 보니 시대의 격랑에 따라 흘러가는 것일 뿐이라면서.


비록 모스크바를 지키지 못했더라도 퇴각 조치가 러시아군에게 행운이었다는 결론을 놓고, 톨스토이는 러시아군의 현명한 선택이라기보다 예전만 못한 혹은 알려진 것 만큼은 아닌 듯한 나폴레옹의 천재성, 그의 판단 착오와 태만함에 있음을 꼬집는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를 점령한 후 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이 있었다. 페테르부르크까지 진군하든가, 쿠투조프가 통과한 길로 퇴각하든가, 아니면 모스크바에서 겨울을 날 수 있음에도 나폴레옹은 군의 약탈을 방치한 채 10월까지 허송세월을 보냈고, 이후의 행보도 자기 군대의 전멸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없는 이동 경로를 선택한 것을 언급하면서,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기 전까지 러시아군의 대처 또한 적절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톨스토이는 프랑스군의 모스크바 퇴각 경로를 놓고 조목조목 짚어가며 가정과 더불어 그가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추론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보로디노 전투 - 프랑스군의 모스크바 점령 - 전투없이 퇴각한 프랑스군 등 일련의 과정을 역사상 가장 교훈적인 현상 중 하나라고 말한다. 전쟁의 승리는 정복의 원인이 되지 않고, 국민의 운명을 결정짓는 힘은 정복자 혹은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에 있다는 것이며, 그 다른 어떤 것이란 헌신과 군의 사기와 의지다. 한마디로 장교보다는 다수의 병사들과 유격대를 치하하는 모습이다.


톨스토이가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민중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2권을 읽을 때까지 이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3권을 읽으면서 왜 민중을 주인공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민중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처럼 민중이 혁명을 일으키거나 사회 변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 것도 일개 병사들이요, 국가의 근간이 되는 이들도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하는 민중이다. 따라서 국가의 존속 여부는 민중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크라스노예에서 전투가 벌어져 러시아군 장병들이 프랑스 잔병을 살육하는 대목에서 톨스토이는 아무 의미없이 죽어나가는 양국의 병사들에게 집중하면서 당시,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쿠투조프에 대한 비난을 비판하고 더불어 쿠투조프야말로 지고의 법칙을 통찰한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추어올리며 그와 같은 사람들이 대중으로부터 받는 잘못된 시선과 판단에서 오는 외로움을 토로한다.


특히 쿠투조프에 대한 톨스토이의 평가는 상당히 호의적(극찬에 가까운)이다. 언어가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라는 신념을 통해 권력자가 기대하는 대로 말을 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전쟁터에서 목적하는 바와 어긋나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고 자기의 판단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의견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총사령관으로서의 모든 권력을 인간을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이 아닌 그들을 구하고 불쌍히 여기는 데 집중했다는, 그리고 쿠투조프의 말, '열 명의프랑스인을 잡는다 해도 한 명의 러시아인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쿠투조프를 높게 평가한 부분이 아닐까싶다.



피예르 얘기를 잠깐 해보자면, 그는 전쟁터에서 목격하고 처형장에서 겪은 죽음의 공포와 궁핍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평안과 자기 조화를 얻는데, 일상에서 누리는 자유와 소소한 기쁨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를 느낀다. 또한 포로가 되어 바라크에 수용되어 지내는 동안 인간이란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며 그 행복은 자연스러운 인간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불행은 부족보다 과잉에서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곤혹스러운 행군을 통해 인간에게 있어 완전한 행복과 자유란 없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부자유스러운 상태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생각은 '도가사상'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도 재밌고.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또 다른 그의 작품.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엄청난 자료 조사와 답사를 다녔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실존 인물을 허구의 인물에 대입시켜 당시 전쟁 상황과 토굴 막사 등의 묘사, 그리고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틸지트 회견 등 역사적 사건에 등장 인물을 배치시켜 실제를 구현하기 위해 애썼음이 보여, 마치 대서사 르포르타주를 보는 느낌도 없지 않다(톨스토이 본인도 장편 소설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도 하고).


톨스토이는 이 전쟁이 의의하는 바와 나폴레옹 퇴각을 차단하는 것이 왜 무의미한지를 여러 측면으로 짚어가면서, 러시아가 가져야 할 목적은 오직 자신들의 땅에서 침략자를 소탕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고. 또한 몰이꾼의 채찍은 짐승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 위협에 있음을 강조한다. 데니소프가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포로 신분으로 인계하지 않고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한 프랑스군의 어린 고수 포로와 열여섯 살에 전사한 페탸는 같은 선상에 있다. 그들의 다른점은 국적 뿐이다.


톨스토이는 가깝고 알기 쉬운 목적만 알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궁극의 목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적 인물의 삶에서 일관성과 합목적성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취했던 보편적 인간의 속성과는 동떨어진 행동의 원인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로는 결코 천재도 특별한 인물도 아니며 그들이 행한 전쟁은 살인 행위에 불과할 뿐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역사가들은 이론에 잘 들어맞고 바라던 대로 되었을 때는 권력은 사건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다른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을 때는 권력이 사건을 일으킨다고 말한다면서 진실보다는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이용되어 흔하게 자기모순에 빠지고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힘이 없다고 일침한다.


에필로그는 소설의 허구적 내용보다는 1812년의 러시아-프랑스 전쟁 전체를 정리하고 나폴레옹(과 몇몇 인물)을 사례로 들어 잘못된 역사 해석과 이에 대한 관점, 당시 세계의 흐름, 민족성과 민족 운동, 과학과 철학, 개인적 사상 등을 피력한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복기한 것에 더하여 톨스토이가 이 작품을 왜 문학으로 분류되기를 바라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엄청난 분량의 '소설'의 핵심이자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는 에필로그에 다 담은 듯하다.






톨스토이는 착실한 가정이란 몇 개의 전혀 다른 세계가 저마다 고유의 개성을 지키고 서로 양보하며 조화된 하나의 전체에 융합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썼는데, 참 쉽지 않다. 톨스토이 본인 자신도 그가 쓴대로 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장을 읽으니 <안나 카레니나> 첫문장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고.


이 장대한 스토리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삶을 지속시키는 것은 개인이 갖는 의지도 있겠지만, 살아야하는 이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릴 때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배경 지식도 부족했고 엄청난 분량을 읽어내기에 급급했었다면, 이번에는 스토리보다는 톨스토이의 얘기에 집중하며 읽었다. 관점과 시각을 달리하니 다른 책을 읽는 듯 하기도 했고, 덕분에 <안나 카레니나>까지 들춰보는 즐거움도 있었다(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는 더 이상 안 읽는 걸로). 




사족.

<안나 카레니나>가 톨스토이 사상의 집합체라면, <전쟁과 평화>는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킨 르포르타주의 느낌이 강하다. 이 작품에서는 피예르, 안드레이, 마리야, 후반부의 니콜라이를 통해 톨스토이의 사상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정도가 크지는 않다. 오히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기에 가까운 소설인데, 톨스토이는 작정하고 뼈 때리며 할 말은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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