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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Mar 23. 2022

전쟁과 평화 3

레프 톨스토이


p17

인간은 누구나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를 행사하고, 자신을 위해 살고, 자신은 지금 어떤 행위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 존재로 느끼지만, 그 행위를 실행하자마자 시간의 흐름 속 어느 시점에서 실행된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고, 자유를 잃어버리며, 미리 정해진 의미만을 지닌, 역사의 소유가 된다.



제3권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시작부터 9월 7일(구력 8월 26일) 보로디노 전투와 프랑스의 모스크바 함락까지 전개한다.









1811년 말부터 서유럽의 무장 강화와 병력 집결이 시작되어 점차 러시아 국경을 향해 이동했고, 이에 따라 러시아 병력도 그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6월 12일 서유럽 군세가 러시아 국경을 넘자 전쟁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의 군대가 네만 강 도하를 시작한 그 시각, 전쟁에 대비해 빌나에 체류하고 있던 알렉산드르 황제는 연일 만찬회와 무도회를 벌이고 있던 중 무도회장에서 이 보고를 받는다. 러시아는 빌나에 와있었지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고, 알렉산드르는 단 나흘만에 빌나를 잃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전쟁 와중에도 러시아 본토가 침입당할 위험성이나 폴란드 서부 여러 지방에 있던 전선이 앞으로 옮겨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이 전쟁에서 최대한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에 급급했으므로 전쟁이 승리로 가는 길은 요원했다. 더구나 소집한 군 회의에서는 절충없이, 서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로 자신들의 안이 옳다고 주장하고 나중에는 회의와 전혀 무관한 인신공격으로 흘러가는 판국이니 배가 산으로 갈 지경이다.


니콜라이는 전투 도중 프랑스 장교에게 사브르를 내리치고 낙마한 그와 시선이 부딪친다. 지독하게 평범한 그의 얼굴을 보면서 가슴이 죄는 불편함을 느끼며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하고 혼란한 감정이 일어나는 니콜라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공로로 훈장을 받지만 전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니콜라이는 이후 그때 느낀 불쾌한 감정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아, 이토록 은밀한 복선이라니!). 나는 이 대목에서 생뚱맞게 신영복 선생이 떠올랐다. 눈을 맞춘다는 것의 의미.


아버지가 죽은 후 보구차로보에 남은 마리야는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볼콘스키 가문의 명예를 먼저 떠올리며 처신을 결정한다. 마리야는 보구차로보 저택의 지배인인 드론을 불러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다가 마을 사람들이 굶어죽을 판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리낌없이 안드레이의 곡식 창고 문을 열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지시한다. 그녀는 더 이상 엄격한 아버지 그늘에서 복종만 하던 연약한 공작영애가 아닌 가문을 대신하는 존재로 서 있었고, 그녀에게 있어 위기가 곧 삶의 의욕이 되었다. 함께 모스크바로 피난을 가서 집과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마리야의 모습은, '민중에게 분배'라는 이상과 실현은 같지만 민중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피예르와 다른 형태로 다가온다.



제3권의 백미는 1812년 8월 26일(구력) 보로디노 전투 묘사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중 최대 격전이라고 할 수 있는 보로디노 전투는 군사와 무기 규모에서 쌍벽을 이루었고, 양측 다 파멸에 가까운 수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냄으로써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전투였으나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러시아 쿠투조프가 후퇴하자, 그 사이에 프랑스군이 모스크바까지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톨스토이는 이 전투를 복원하다시피 아주 상세하게 그려냈다. 톨스토이는 보로디노 회전의 직접적인 결과는, 50만 침입군의 파멸이자 정신적으로 강력한 러시아에게 굴복당한 나폴레옹 치하 프랑스의 멸망이라고 썼다. 그렇기만 할까?






톨스토이는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작하기 위해 네만 강 도하 직후 나폴레옹과 발라쇼프의 접견 장면에서 나폴레옹을 마치 이성을 잃은 광인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는 전쟁의 천재란 '광휘와 권력에 둘러싸여 있는 군인에게 우매한 대중이 그 권력에 천재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성질을 덧붙이고 아첨하며 부르는 것이 지나지 않는다 (p83)' 고 꼬집는데, 나폴레옹을 가리킴은 말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점 하나, 톨스토이의 시각. 영국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등 각국의 자신감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독일인의 자신감은 그야말로 완고하고 역겨울만큼 나쁜다면서 그 이유가 과학을 알고 있다고 망상하고, 자기가 생각한 과학을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인의 자신감은 한 마디로 겸손함ㅡ무언가를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ㅡ에 있다고 얘기하는데 톨스토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점 둘, 톨스토이는 이 작품이 소설로 읽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1812년에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에 대해 역사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견을 작가 자신이 소설 내 서술자임을 드러내놓고 피력하고 있다. 더하여 모스크바 소각을 비롯한 러시아의 승리는 러시아군의 계획과 작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계절의 영향과 이를 무시한 나폴레옹의 오만 등을 들면서 불과 50여년 전에 자국의 땅에서 벌어진 전쟁을 냉철하게 서술했다. 또한 1812년 보로디노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서술 등 작품 전체에서 이러한 면들이 사이사이 보이는데, 이런 점들 때문에 톨스토이는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톨스토이는 전쟁의 원인을 국가적 혹은 신념에 의한 대의라기보다 황제부터 장교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욕망을 분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더불어 그들 자신이 믿고 있는 바와 다르게, 그들은 의지를 갖지 않는 역사의 도구였으며 이는 활동하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불변의 운명이며 인간 사회에서 계급이 높을수록 자유는 줄어든다고 말한다. 톨스토이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보로디노 회전에서 나폴레옹은 누구에게도 총을 쏘지 않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것은 모두 군인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따라서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 당시 했던 말과 아주 유사하다. 톨스토이는 프랑스 병사가 보로디노 회전에서 러시아 병사를 죽이려 한 것은 나폴레옹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나폴레옹의 의지보다 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행해졌다는 것. 나폴레옹이 지시한 작전명령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고, 역사라는 큰 틀 안에서 볼 때 나폴레옹이라는 한 개인의 영향력은 미미하다는 의미일테지만,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화재의 원인을 러시아군도, 프랑스군도 아닌 주민의 부재에 있다고 썼다. 도시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이다. 사람이 떠난 도시는 더 이상 도시로 존재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분량이 가장 적지만, 제일 중요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톨스토이가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생각도 들고.





위기의 순간에 사람의 민낯이 드러나는 법이다. 전쟁 중에 나라가 망하느냐 마느냐하는 순간에도 탐욕 때문에 이혼 타령이나 하고 있는 옐렌과 쿠라긴 집안 사람들 같은 부류가 있는가 하면, 예상치 못한 용기를 내는 자들도 있다. 스스로를 다스릴 줄 모르는 지휘관은 폭군과 다름없다. 3권에서 고난을 통해 성장한 사람은 마리야와 나타샤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인물이 안드레이라면, 항상 예상을 빗나가는 이는 피예르다.


아무튼, 러시아군은 모스크바 후방까지 퇴각했고, 텅 빈 모스크바에 입성한 프랑스군은 승자가 아닌 약탈자에 불과했다. 제3권의 마지막은 모두 떠난 모스크바에 남아있던 피예르가 화재가 난 모스크바 어느 집에서 어린 소녀를 구하다가 방화범으로 몰려 프랑스군 기병 척후대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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