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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Mar 22. 2022

전쟁과 평화 2

레프 톨스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라, 한 시간 전에 죽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으니. 인생이란 영원에 비하며 찰나에 불과한데, 대체 이런 것으로 괴로워할 가치가 있을까?
p55




제2권은 프랑스와 우방국이 되면서 군사적으로 비교적 평화로웠던 1806년부터 1810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안드레이와 빌리빈의 편지를 통해 1806년 예나 전투와 풀투스크 전투를, 특히 프랑스군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고 이기고 있는 와중에 후퇴를 선택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일으킨 풀투스크 전투 당시 지휘관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2권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프리메이슨 단원이 되어 사명을 실천하면서 한동안 삶의 활력을 찾는듯 하지만 결국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고뇌에 빠지는 피예르.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으나 아내를 잃고 시골에 칩거하다가 다시 출세의 길로 들어섰으나 나타샤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외국 생활을 해야만했던 안드레이. 나날이 쇠락해가는 집안의 재정 상황을 외면하다가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자 휴가를 얻어 귀가하지만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다시 군대로 복귀하는 니콜라이, 타고난 처세술과 본인 못지 않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는 보리스.









이오시프와의 대화를 통해 프리메이슨 사명을 삶의 지침으로 삼으며 영지 관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자신의 사명이 실현되고 있다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피예르의 모습은 왠지 장남감을 양보한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프리메이슨 가입 후 키예프에 도착한 피예르가 관리인들에게 설명한 내용ㅡ농노적 종속관계에서 농민을 완전히 해방하기 위한 방법 강구, 지나친 노동 금지, 양육을 해야하는 부녀자의 노동 금지, 농민 원조, 체형 금지, 각 영지에 병원과 고아원과 학교 설립ㅡ은 몇 년 뒤에 출간될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런데 지시만 내릴 뿐 진정성 있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살피지 않는 모습은 피예르가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데, 그의 이러한 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프리메이슨 내부에서 위상이 더욱 높아져 돌아온 피예르가 절대왕정에 반하는 사상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그랜드마스터를 포함한 보수적 단원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피예르는 순진하게도 인간에게 다양한 견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다양한 사람들을 접촉하고, 일을 직접 시행한 경험이 전무한 피예르는 삶에 대해 고민할 뿐 체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더하여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리시예에서 안드레이와 나눈 대화를 통해 이 두 사람을 레빈이라는 한 인물에 투영해 톨스토이 본인이 가졌던 갈등과 고뇌와 방황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톨스토이가 이미 30대부터 자신이 가진 딜레마를 노구의 몸이 될 때까지 스스로 만족할만큼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든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정신적 고통이 그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짐작할 수 있다.


피예르가 기사단의 세 가지 목적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는 것은 자기정화와 교정이다. 이오시프의 지적에서 볼 수 있듯 피예르는 많은 것을 계획.실행하고 있지만 정작 자아성찰을 회피하고 있다. 피예르의 일기를 통해 톨스토이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신의 일련의 과정을 투영한 게 아닐까싶다. 자기인식, 자기완성, 사랑에 도달하는 덕성. "인생의 변전만이 우리에게 인생의 허무를 가르쳐주고,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나 새로운 삶의 부활에 대한 사랑을 도와주기 때문입니다.(p280)"






친구를 병문안 하기 위해 병원을 찾다가 방치된 채 죽어가는 병사들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한 후 프랑스와 러시아의 틸지트 조약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전쟁터에서 죽어간 병사들과 열악한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기고 낙담하지만, 역시 귀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니콜라이의 이중적 모습도 인상에 남는다. 틸지트 회견 장소에서 마주친 보리스와 니콜라이는 서로의 삶에 방식이 여전히 못마땅하다. 적에게 총구를 겨누는 군인 니콜라이와 적에게 손을 내밀줄 알아야 하는 외교관 보리스의 입장. 명예와 황제의 충성이 우선인 부유한 백작과 출세가 유일한 목표인 몰락한 귀족. 이들의 간극은 좁혀지기 어려울 터다.


니콜라이가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사냥에 몰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니콜라이는 여전히 누군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얻으며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떠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그는 도망치듯 군대로 복귀했고, 어쩔 수 없이 귀향한 후에도 노부를 도와 해결 방법을 찾기보다는 사냥을 통해 외면을 선택한다. 무엇보다 사냥 도중 자신의 개가 늑대에게 물려죽는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울먹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은, 이 사람이 과연 수년 째 군에서 복무 중인 현직 군인이 맞나 싶을 정도다. 책임에서 벗어나는 길만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 니콜라이의 단면이고, 톨스토이는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물고 늘어지는 개만도 못한 그의 태도를 통해 이 지적의 대상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야할 길(방법)이 분명 눈에 보이지만, 두려움에 선뜻 그 길로 들어서기를 망설이는 모습은 니콜라이를 포함해 모두에게 해당한다. 세습된 '백작'이라는 귀족 신분 외에는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에도 허울 뿐인 명예, 굳어져 온 허영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안드레이는 황제의 신임을 받아 개혁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스페란스키와 대화를 한 후 그에게 존경심을 품게 된다. 스페란스키는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지식인이자 자신의 실력과 열정으로 잡은 권력을 러시아의 복지를 위해서만 행사했으며, 인생의 현실적인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판단하는, 한마디로 안드레이가 추구하는 인물상이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스페란스키의 만찬회에 참석한 안드레이는 함께 동석한 이들의 모습과 대화를 통해 지난 몇 년 간 해왔던 일들을 상기하며, 그 일들이 본질적인 개혁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모방해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기에서 톨스토이가 늘 강조해왔던 러시아적인 개혁의 부재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삶의 열정을 잃은 안드레이와 이제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찾았다고 믿는 피예르의 대화는 마치 <안나 카레니나>의 레닌이 자기분열을 일으키며 홀로 독백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서 톨스토이가 얼마나 공을 들인 작품인지 알겠더라는.






재미있는 점 하나. 이제 막 출세를 시작한 젊은 보리스가 모스크바를 멸시하고 페테르부르크를 사랑했다는 문장이 있는데, 새로운 수도 역할을 했던 페테르부르크의 부상이 곧 신흥 세력의 부상이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17세기 이후부터 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에 있어 어떤 위치와 의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세속적 사랑에 괴로워하는 마리야, 사랑하는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하는 마치 어린아이같은 사랑만 갈구하는 나타샤가 있다. 이 여성들의 삶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게 되는 시기가 온다. 





사족.

1. 몰랐던 것은 아니다만 읽다보니 새삼, 1805년~1807년의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는 정말 막강했구나... .

2. 읽다가 갑자기 느낀 부분, 톨스토이는 등장인물의 사소한 관계나 상황에 벌려놓은 모든 밑밥을 꼼꼼하게 거둬들인다. 예를 들어 나타샤와 보리스의 관계는 굳이 마무리 짓지 않아도 될 법 한데, 어디 하나 허투루 대충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대문호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3. 재정 상황이 악화일로임에도 생활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로스토프 노부부가 기껏 생각해낸 위기 해결 방법은 니콜라이를 지참금이 많은 아가씨와 결혼 시키는 것이다. 니콜라이가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이 한심한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온다. 니콜라이 본인도 크게 의식하지 못하는 니콜라이의 무책임함은 집안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4. 2권의 빌런은 아나톨!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는지.





#전쟁과평화

#레프톨스토이

#문학동네

#세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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