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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Dec 29. 2022

의존 _ 코펜하겐 삼부작 3

토베 디틀레우센


스무 살 토베, 쉰세 살 비고 F.와 결혼했다. 토베는 자기가 왜 비고와 결혼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성공하기 위해서였는지, 어머니가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이었는지. 다만 그녀가 아는 것은 자신의 심장을 뛰게 만든 사랑은 2년 전 단 하루를 만났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다던 쿠르트 뿐이다. 지금은 그의 생사여부도 알지 못한다.






[밀알]에 작품이 실린 젊은 작가들의 모임인 젊은 예술가 클럽에서 만난 피에트의 구애. 비고에게 도저히 이혼 얘기를 꺼낼 수 없어 불안 증세를 보이는 토베는 두 남자와 거리를 갖고 정신과 요양원에 머물면서 한때 비고의 집에서 가능했던 안도감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녀의 장편소설이 출간됐고, 이혼을 하지 않은 채 피에트가 마련해 놓은 하숙집으로 이사한다. 


토베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을 갈망하는데 비고와 피에트는 이것에 대해 관심도 없고 충족시켜 주지도 않는다. 비고는 성생활을 아예 거부하고, 피에트는 토베와 즐기기만을 바란다.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을 느끼는 토베. 


어느 파티에서 알게 된 에베와 연인이 된 토베는 얼마 후 에베의 아이를 임신했고, 딸을 낳았으며, 정상적인 보통 가족을 꾸렸다는 사실에 행복해한다. 토베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했다면, 청년이 된 뒤에는 '정상적인 가족'에 집착한다.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하면 자신의 결핍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는데, 이는 유년 시절 가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자신의 욕구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썼으며, 그나마 공감해 주었던 오빠마저 집을 나가면서 방치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토베 본인의 말처럼 그녀가 아주 오래 전부터 원해 왔던 일이 '정상적인 가족'이었을 터다. 그런데 읽다보면 그녀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가족'이 기준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단지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되기만 하면 그만인가?


불화가 있었던 에베와의 관계가 좋아질 무렵, 토베는 둘째를 임신한다. 토베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으나 낙태는 불법이다. 토베는 겁에 질려 낙태해 줄 의사를 찾아다니느라 고군분투한다. 토베가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은 출산도, 두 아이의 양육도 아니다. 에베와의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에베는 토베를 걱정해 낙태를 반대한다. 그녀가 이토록 낙태를 강행하는 이유는 뭘까? 낙태의 시나리오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토베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 속 깊은 곳에 그 흔적이 오래 남게 될 뿐.


에베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통보한 토베는 딸 헬레를 데리고 카를이 구해 놓은 하숙집으로 이사한다. 이때 토베의 나이 스물다섯 살 무렵이다. 토베는 그토록 '정상적인 가정'에 집착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가정을 파탄내기를 반복하는데, 어린시절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상황이 더 좋지 않다. 토베가 어머니를 향한 왜곡에 가까운 몽상적인 시선과 집착을 떠올려봤을 때, 그녀의 딸 헬레가 토베를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토베가 카를을 선택한 이유는 데메롤 때문이다. 데메롤에 점점 더 중독되어가는 토베는 야위어갔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임신을 짐작하면서도 데메롤을 포기하지 못해 계속해서 귀가 아프다고 거짓말 하는 토베. 병원에서 몸에는 아무 이상없이 건강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거짓말하는 토베에게 처방전을 위조해 강력 진통제까지 처방하는 카를. 데메롤을 마음껏 투약할 수 있겠끔 카를을 붙잡아두기 위해 그의 혼외 자식까지 받아들인 토베와 그녀를 혼자 소유하기 위해 메데롤을 이용한 카를.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독毒일 뿐이다.


처음에는 데메롤을 주사하기 위해 귀의 통증을 거짓으로 호소했지만, 중독 후 환통을 느끼는 토베는 카를의 손에 이끌려 멀쩡한 귀를 수술하고 만다. 그제서야 귀의 통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된 토베, 이제 그 귀로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녀는 약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벗어날 수 없는 완전한 중독자다. 


토베는 독립적인 삶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녀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존한다. 비고 F. - 헤이트 - 에베 - 데메롤(마약성 진통제) 등 대상만 달라졌을 뿐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진정으로 독립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녀는 작가로서 입지를 다져 유명하고, 원고료를 받아 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없음에도 말이다. 거기에 토베가 의존했던 대상들을 과연 사랑했는지의 여부도 의문이다. "나한테만 관심이 있는 경우에만 상대를 좋아할 수 있고, 짝사랑으로 괴로워할 일은 없다"는 그녀의 말에서 안심 혹은 순간의 즐거움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토베는 이른 나이부터 많은 것들을 경험했지만, 정작 가정에서 사랑과 공감을 나눈 경험이 전혀 없다. 하지만 파멸을 자초한 그녀의 선택이 유년 시절의 결핍을 핑계로 삼을 순 없을 듯 하다. 





3권의 첫문장에 나오는 '녹색의 방'은 토베의 안정감 혹은 안도감을 상징한다. 그녀의 삶에서 안도감은 비고를 떠나면서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녀의 인생에 안도감이 존재한 적이 있었을까. 


회고록 <코펜하겐 삼부작>은 세 권 모두 문장이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다. 외도, 결혼, 약물 중독으로 얼룩진 토베의 청춘과 인생. 그녀의 살기 위한 분투는 과거부터 회고록을 쓰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늘 현재진행형이다. 


살면서 긍정적인 감정 교류가 거의 없었던 토베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 사랑을 준다는 것에 대해 경험이 없다. 데메롤의 환각을 경험하고 자신이 진정 도달하고자 했던 감정을 느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는 이 문장에서 그녀가 무척 안타까웠다. 오직 글쓰는 것만이 인생의 즐거움이였던 사람. 나는 그녀가 왜 미련도 감정도 없이 비고를, 에베를 떠나는 게 가능했는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방식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토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사랑이 되어줄 이는 빅토르가 될 듯하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사실 회고록이 끝난 이후의 토베의 삶이 무척 궁금하다.)



이 회고록은 내밀한 감정들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에베는 토베에게 왜 인물을 새롭게 창조하지 못하고 실제 삶에서 인물들을 가져오냐고 따지며, 그건 예술이 아니라고 고함치는데, 작가 본인의 감정적 체험이 없었다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이렇게 서술할 수 있을까싶다. 


세 권을 읽는 동안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가 마지막에 그 마음을 조금 덜어냈다.


94.

내게 인생이란 오직 글을 쓰고 있을 때만 즐거운 것이다.



#의존

#코펜하겐삼부작

#토베디틀레우센

#을유문화사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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