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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Dec 27. 2022

청춘 _ 코펜하겐 삼부작 2

토베 디틀레우센



"나는 두 팔로 내 몸을 감싸 안은 채 내가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을 만끽하며 기쁨에 젖는다. 그렇지 않다면 내 청춘은 당장이라도 없애 버리고 싶은 하나의 결함이자 방해물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후 가사도우미로 첫 직장에 출근한 토베는 빈부의 차이와 모멸감이 무엇인지를 단 하루 만에 알게 된다. 첫 직장생활은 반나절로 끝났다. 이후 그녀는 하숙집 허드렛일부터 타자수에 이르기까지 여러 직업을 경험하게 된다.







2부 청춘은 토베의 열여덟 살까지를 서술한다. 그녀의 일생에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크로그 씨와 잡지 [밀알]의 편집자 비고 F. 묄레르가 그들이다. 


친구 루트를 통해 알게 된 크로그 씨는 토베가 처음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는 시선을 주고 받은 사람이자 그녀의 시를 칭찬하며 언젠가 시인이 될 거라고 칭찬하고 격려해준 사람이다. 그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을 때 자신의 시가 변변치 않았기 때문이라고까지 생각했으니 토베가 느꼈을 낙담이 얼마나 컸을지 알만하다. 


비고 F. 묄레르는 토베가 문인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우연히 [밀알]이라는 잡지에 대해 듣게 되고, 우편으로 보낸 시가 잡지에 실리게 된다. 이후 그녀는 비고와 각별한 관계가 되고, 시집을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출판사마다 돈이 되지 않는 시집을 출간하기를 꺼려하자 비고는 자비로 토베의 시집을 출간한다. 혹자는 쉰세 살 남자와 열여덟 살 여자의 관계를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비고는 토베를 예술가로 인정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보여지는 비고를 향한 토베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장담할 순 없으나 적어도 동경 이상의 감정은 있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토베는 비고를 만나면 행복했다.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장악하면서 유럽은 어수선하고, 그 와중에도 모순덩어리 세상은 굴러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직장 내 성폭력은 만연하다.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고 토베는 성추행도 모자라 사회주의자라는 명분으로 해고당한다(토베는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다). 이 대목에서도 아이러니한 점은 토베의 해고 소식을 들은 남자친구 에를링은, 정작 본인은 혁명을 외치며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토베에게는 해고를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어야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골수 사회민주당원인 아버지조차 딸이 어리석었다고 분노한다. 서민에게 있어 먹고사니즘에 이념과 신념은 부차적인 문제다. 


토베는 아마추어 연극배우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대신에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직장의 마스터 스벤 오게의 은혼식의 축가를 쓰면서 이모가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받는 시각에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축가를 쓰고 있다는 삶의 부조리를 느낀다. 



그녀는 시를 쓰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간절히 갖고 싶다. 침대 하나, 테이블과 의자와 타자기 한 대, 혹은 종이 한 뭉치와 연필, 그리고 사면이 벽으로 되고 잠글 수 있는 문이 있는 방. 이거면 족하다. 이 지점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도리스 레싱의 <19호실>이 떠오르면서 자신의 공간이 부재한 여성에게 '방'이 갖는 위력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딸에게 굳이 방을 하나 줘야 할 이유가 뭐냐' 며 무감하게 내뱉는 아버지의 말에, 방이 필요하다고, 그 방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싶다고, 소리치는 토베의 분노를 이해한다. 


딸이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토베에게 시를 보여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보통 가족은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아버지와 토베의 관계를 보면서 이들 부녀가 좀더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면 유년시절의 딸은 엄마의 사랑에 덜 집착하고 정서적 결핍도 조금은 채워지지 않았을까싶다. 토베의 아버지는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야 실망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밀알'에 실린 딸의 시를 칭찬하고 기쁜 마음을 전하기보다 충고하기에 더 바쁘다. 과연 그럴까? 삶에 아무런 기대가 없다면 실망 이전에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누군가를 만나고 경험하며 매순간 일어나는 감정들을 시로 옮기는 토베에게 있어서 시는 구차한 시간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열여덟 살에 독립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토베의 시집 <소녀의 마음>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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