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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디에 Mar 17. 2023

개 신랑 들이기

다와다 요코



개인적으로 문학계의 코즈모폴리턴이라고 생각하는 다와다 요코의 중편소설 두 편이 실렸다. 물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언어적 디아스포라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의 성향이 두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먼저 전래동화와 설화를 가미한 <개 신랑 들이기>를 읽은 후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어느날 느닷없이 침범해 미쓰코의 몸을 핥는 다로. 그와 어울리는 도시오. 따돌림 당하는 후키코. 점점 다로에게 동화되어가는 미쓰코.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동네 주민들의 시선. 사이사이 느껴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크게 와닿지 않아 한 번 더 읽었던 소설. 


각자의 개성과 성향, 불가피한 사정 등은 고려되지 않은 채 '정상' 혹은 '일반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선가르기를 하는 사회 모습이 소설에서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 선을 넘어 '정상'의 범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획일화 시켜야만 하는데, 그것을 거부했던 이들ㅡ미쓰코, 후키코, 다로ㅡ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다. 읽다보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잘 모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페르소나>는 독자 대다수가 뜨끔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싶다. 재미있는 점은 백인은 유색인을, 유색인은 그 안에서 차별적 시선으로 타민족을 폄하한다는 것이다. (무슨 먹이사슬도 아니고.)


동아시아인은 선천적으로 표정이 없어서 또는 유교 교육을 받아 표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그 속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독일인들. 그래서 평소에 성룡 김의 품성이 어떤지 알고 있는 동료들조차 성룡 김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떠들고 다니는 정신병원 환자인 레나테의 말을 하나둘 믿기 시작한다. 


미치코의 동생 가즈오는 한국인과 베트남인을 폄하한다. 학문조차 이기고 지는 것으로 판단하는 가즈오가 기준하는 것은 개인의 소양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국가의 경제적 능력인 것으로 읽혀진다. 소설에서는 '베트남인처럼 생겼다'고 말하면 마치 욕인 것으로 치부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에서도 특정 민족 혹은 국가를 경멸하고 격하하는 언행은 현재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당장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대다수의 시선을 보라).


미치코가 사다의 집에서 가면을 쓰고 나와 전철을 타고 귀가하는 모습은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면이 얼굴을 가린다기보다 오히려 몸을 드러내고 걷는 느낌을 받는 미치코. 단지 얼굴을 가렸을 뿐이데 민족, 인종,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이 부분, 정말 통쾌했다.



몇 달 전에 읽었던 <지구에 아로새겨진>과 <페르소나>는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르소나> 강추한다.




#개신랑들이기

#다와다요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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