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서머싯 몸

by 호디에

서머싯 몸 본인이 관찰자이자 1인칭 서술자로 나선 이 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즈음을 시작으로 미국발 경제대공황을 지나온다. 개인의 욕구에 충실한 삶과 물질적인 삶의 조화에 대해, 그리고 개인이 선택한 삶과 국가에 속한 국민(혹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삶의 괴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래리는 전쟁터에서 한순간에 생명을 잃은(그것도 자기를 구하다가)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부당함을 느끼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뒤에는 세상의 일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그리고 삶의 목적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서 돌아온 건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이 그저 운에 결정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이것을 깨닫기 위한 래리의 여정이 이 소설의 주요 골자다.


래리가 말하는 젊은 세대의 시행착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사벨과 래리의 대립,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소피, 선과 악의 본질적인 상관 관계, 지나친 자기확신에 의한 오류와 폭력, 사람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를 찾는 일 등 소설의 인물들이 고뇌하고 갈등하는 요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매순간 선택해야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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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두꺼운 분량에도 크게 지루하지 않고 읽기가 수월한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명확한 캐릭터 설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상류층에 가치를 두는 엘리엇,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이기까지 한 이사벨, 삶의 선택에 있어서 극단적인 소피, 사건을 관찰하며 슬쩍슬쩍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갈등 해결에 있어서는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는 화자 서머싯 몸.


특히 전쟁터에서 돌아온 후 방황하는 래리와 미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물질적 삶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이사벨은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사벨은 미국이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나라로 나가야하는 데에 참여하고 이바지하는 게 남성 미국인의 도리이고, 래리처럼 나태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미국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는 일을 하고 사회에 기여하해야만 '정상적인 사람'이며 자신이 주장하는 삶의 방식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사벨은 소피의 타락을 두고 날을 세우고 비난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더라도 충분히 회복될 수 있고, 소피가 품성이 올바른 사람이었다면 제대로 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었다고 단정한다. 이렇듯 이사벨의 자기확신은 거의 폭력적일만큼 일방적이다. 지나친 자기확신은 소수 종교 박해, 식민 전쟁, 히틀러 유대인 박해 등으로 확대된다. 개인적으로 이사벨의 주장들이 어딘지 익숙하게 느껴졌는데, 근대 이후 산업주의로 전환되면서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바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보니 이사벨을 향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보다 공부하고 영혼을 채우며 의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욕구라고 반박하는 래리의 주장은 반국가주의 혹은 반집단주의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야망도 없고 명예욕도 없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행로를 따르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자하는 래리. 세상을 여행하면서 노동 현장에 뛰어들고, 깨달음을 얻고자 명상과 참선에 열중했던 그의 선택은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상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중심으로 형성되는 현실적인 삶으로의 흡수라기보다는 전우가 그를 구했던 것처럼, 그 자신 역시 관계와 나눔의 가치를 삶의 현장에서 추구해야함을 깨달은 것일테다.


어떤 삶이 옳다 그르다 누가 함부라 단정할 수 있으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사벨보다는 래리의 삶에 더 이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벼린 칼날에 베어지고 아무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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