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가의 행운

에밀 졸라

by 호디에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의 첫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은 한 여성과 두 남성으로부터 시작된 두 집안의 대서사의 출발점이자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밀 졸라는 1871년에 쓴 서문에서 루공마카르 총서를 두고 자신의 관점에서 「제2제정기 한 가문의 자연사와 사회사」라고 썼다. 이 책의 서문에서 그가 언급했듯 1951년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쿠데타에서부터 시작하지만, 그들의 서사는 훨씬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전개되고 1851년 12월, 쿠데타가 성공하는 데에서 끝을 맺는다. 소설의 구성은 각 장章마다 인물이나 사건의 서사를 그리고 있는데, 7장을 제외하면 장章의 끝은 1851년 12월, 봉기군이 집결하고 사건의 결정적 장소였던 시청 광장으로 향한다.


주요 배경이 되는 도시 플라상의 세 개로 나뉘어진 구역의 위치도 상당히 상징적이다. 특히 귀족들의 구역은 세 구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뷰가 장관이다. 또한 대로들이 경계선의 역할을 하면서 이렇게 나눠진 구역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이는 지리적인 의미를 넘어서 혁명 혹은 쿠데타로 세상이 뒤바뀐 듯해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귀족들의 처세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신분과 계급은 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신분이 다른 결혼 혹은 연애에 있어서 비난의 대상은 하층민이다. 세 사람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은 아델라이드가 정원사 루공과 결혼했을 때에도, 비렁뱅이 마카르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을 때에도, 모든 비난을 하층민에 해당하는 두 남자에게 쏟아부었다. 아델라이드가 그런 선택을 한 데에는 온전치 못한 정신 때문이라며 동정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비난과 평판이 아델라이드가 속한 신분이 아닌 루공과 마카르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서 나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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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핵심은 정치적 사건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 질투와 시기, 혼란 시국에 드러나는 저열한 인간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탐욕의 끝판왕들의 집합이라고 할 만하다.


은퇴한 피에르와 펠리시테 부부가 세를 들어 살게 된 집은 부자들의 동네가 보이는 가난한 서민들 동네의 맨 끝에 자리해 있다. 즉 부부가 그토록 진입하고 싶었던 부자들의 구역 문간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셈이었다. 이 장면은 결국 사다리 한 칸 위로 올라가려 했던 피에르의 야심이 일차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창가에 앉아 부자들의 동네를 바라보며 그곳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유일한 낙이며 여전히 일확천금을 꿈꾸는 펠리시테의 모습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허영심을 목격할 수 있다. 공화파에서 보수파로 갈아 탄 피에르에게는 정치적 신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그는 자신에게 사회적 허영과 부를 안겨 줄 수 있는 줄만 따라갈 뿐이다. 이는 그의 아내 펠리시테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부에 대한 집착과 탐욕은 병적이라고 보여지는데, 결국 이 집착이 그들 자신을 성공(?)의 길로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하겠다.


그야말로 최고의 빌런 앙투안. 그는 아내를 돈 버는 기계쯤으로 여기고, 가족의 등골을 빼먹는 것도 모자라 자식들의 정신과 육체를 종속시키고 지배하며 심지어 딸의 친구들을 성추행하는, 자기의 복수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고아나 다름없는 조카를 악의적으로 가스라이팅하고 이용하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희대의 인간말종이다. 파스칼을 제외한 루공마카르가 사람들은 모두 이기와 탐욕으로 꽉꽉 채워져있다(그런데 따지고 보면 파스칼 역시 학문적 욕망이 그득한 사람이다). 그들 각자 어느 쪽을 지지하든 정치적 혼란으로부터 플라상이 자기 차지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욕망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았다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소설의 마지막 다섯 문장은 루공 부부의 행운(혹은 영광)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로써 이루어진 것인지를 말하면서 학살 위에 세워진 승리임을 꼬집고 있다. 에밀 졸라가 이것이 루공 부부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얼마든지 짐작 가능하다.


실베르와 미예트의 서사가 가장 가슴 아프고 슬펐다.

주요 등장인물들 중 가장 어리고 순수한 두 사람(가장 약자)이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도 의미하는 바가 있지싶다.



피에르의 단춧구멍에 꽂힌 분홍색 새틴 리본은 루공 부부의 승리 가운데서 유인한 붉은빛 흔적이 아니었다. 옆방 침대 아래에는 뒤꿈치가 피범벅이 된 구두 한 짝이 그들의 기억에서 잊힌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길 건너편의 무슈 페로트 시신 옆에서 타고 있는 양초는 마치 벌어진 상처처럼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났다. 그리고 멀리 에르 생미트르 깊은 구석의 모석 위에서는 흥건한 피가 서서히 엉겨 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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