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리

카멜 다우드

by 호디에

세기 말, 1999년 12월 31일 밤 10시부터 2000년 1월 1일 새벽 4시 사이.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축제가 벌어졌을 그 시각, 알제리 북서부 하드 셰칼라에서는 무장 단체에 의해 대학살이 일어났다.


한 시대의 비극적 사건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 및 약자들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강요당하는 망각과 침묵. 여전히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고 이해와 연민이 부재한 세상에서 피해 여성의 절통한 목소리와, 낙인 찍힌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인 여성의 애끓는 호소와, 학살 현장을 목격한 자의 처절한 증언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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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어둠의 10년' 동안 알제리의 서민들은 밤낮으로 시달렸다. 낮에는 정부군으로부터, 밤에는 무장 단체로부터. 정부군은 각 가정의 가장들을 무장 단체의 조력자라고, 무장 단체는 반역자라고 그들을 의심하고 괴롭혔다. 학살이 벌어지기 한 달 전, 정부는 테러리스트에게 전기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마을의 전기를 끊었고, 무장 단체는 반역자로 규정한 마을을 처벌하는 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날의 학살은 어느 한쪽에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내전의 역사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전쟁 이상의 비애를 안긴다.


피해자, 목격자, 가해자.

소설은 그들 한 명 한 명이 역사서 그 자체임을 말한다.


다섯 살 때 무장 단체의 칼에 목이 베여 후두와 성대 손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튜브를 끼워야만 호흡이 가능하며 지난 21년간 17센티미터 절창의 흔적을 안고 살아온 오브는 이 지옥같은 세상에 뱃속의 아이를 내놓을 수가 없다. 약혼자를 잃고 강제로 산속으로 끌려 들어가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힌 여성 함라의 소원은 단 하나, 딸의 성장을 지켜보고 딸이 결혼을 하게 되면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줄 수 있는,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일상이다. 문맹의 아이사는 자신이 목격한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아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하다. 그는 오브에게 애걸한다. 네가 나의 증인이 되어달라고.


소설에서 오브의 본명은 그녀가 21년만에 돌아온 고향 땅을 딛고서야 드러난다. 오브는 하드 셰리칼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 달리 고향에서조차 그녀의 이름이, 그날의 살생이 기억되기를 원치 않는다.


아무도 10년 동안 벌어졌던 내전에 대해, 내전의 피해자에 대해 기억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목소리는 투쟁이다.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성대임에도 토해내는 울부짖음을, 베일에 가려진 깊은 상처를 알아봐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잊지 말라고, 살아남은 자들이 죄책감과 부채감을 갖지 않도록 해 달라고, 그래서 더 이상 그늘 아래 숨어 살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다.


결정적인 순간에 언니의 희생으로 살아난 자신의 목숨이 오브에게는 어떤 의미가 됐을지, 감히 그 심정을 공감한다 말하기 어렵다. 언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짓눌려 있던 오브는 순례하듯 고향으로 향한 여정에서 만난 이들에 의해, 그리고 후리를 통해 언니의 진정한 사랑과 염원을 깨닫는다. 그리고 삶을 죽음처럼 살아온 것, 후리를 죽음으로 이끌려고 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모쪼록 실제 피해자들의 고통이 오브처럼 치유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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