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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쿠리 Sep 12. 2020

올해의 채용설명회는 전부 온라인으로 합니다

재택근무 중 채용설명회의 극성수기를 경험하다

월요일: 폭풍 전야의 평화


아침 메뉴는 오트밀과 계란 프라이다. 매년 이때쯤이면 회사는 내년의 인턴과 신입사원의 채용을 위해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는데, 나에겐 이번 주가 극성수기다. 이번 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무려 삼일 간 내가 맡은 채용설명회가 예정되어있기 때문.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모든 채용 행사는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직접적인 소통은 어려워졌지만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닿을 수 있다. 이젠 홍콩에서도 미국에 있는 학생들에게 아시아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들 월요병에서 벗어나고 정신을 차리면 오후엔 난장판이 될 것 같으니 일단은 평화롭게 일주일을 시작한다. 아침을 먹으며 수요일에 있을 채용설명회의 신청자수를 확인하고, 지원 자격에 맞는 인원으로 추려서 팀원들에게 보내 두었다. 옆에는 아이패드로 일본 드라마를 틀어놓았다. 몇 번이나 봤던 에피소드지만 그래도 음악 대신 틀어놓아 본다. 여유로운 틈을 타서 글쓰기와 외국어 공부에 대한 탐색도 해본다.




아침 단골 메뉴.



오후 3시, 목요일에 있을 설명회를 같이 준비하는 상사 Q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들 재택근무라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없으니 이메일과 전화가 주요 소통수단인데, 그녀는 전화를 선호한다. 그녀와 전화를 마치면 항상 일 한 바구니를 받게 된다. 오늘도 통화 후 길어진 나의 to-do list.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만큼 혹시 설명회 당일 본인에게 기술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MC 자리를 물려받아 대신 진행을 해야 한다고 했다. ‘기술적인 문제가 없도록 미리 확인하고 예방해야 하는 거 아니야?’가 내 마음의 소리. 하지만 예측 불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배움의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아니야, 문제가 생겨서 계획에서 벗어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내가 MC가 되는 일은 없기를.


너무 당연하지만 마케팅 시즌이라고 해서 마케팅에 관한 일만 있는 게 아니다. 내년에 입사할 신입들에게 나갈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미 면접이 진행되고 있는 부서의 면접을 조율하고 면접관들의 피드백을 모니터 하는 업무도 처리했다. To-do list에 새로운 아이템이 많이 추가됐지만 위쪽에 있는 것부터 해야 하니 Q에게서 받은 일을 아마 내일로 미뤄질 것 같다.


다시 수요일에 있을 채용설명회로 돌아와서, 오전에 팀원들에게 보냈던 참가자 리스트에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참가할 학생들에게 회의 링크 및 참가 방법을 전송하고 설명회의 리허설을 시작해본다. 온라인 행사라 참가자 입장에서는 덜 복잡해 보일 수도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리허설을 해보면 세세하게 체크해야 할 것들이 꽤 많고, 특히 최신 기술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을 모시고 하려니 심히 걱정된다. 그래도 다행히 상사 Y가 있다.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화요일: 폭풍은 시작되었다


어제 일을 마치기 전 to-do list를 확인했던 결과 오늘 일이 매우 많을 것 같아서 8시 20분에 일어나 8시 반부터 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두 시간이 지난 10시 반까지 쉬지도 않고 계속 일과 씨름 중이다.


일단 다음 주에 새로 입사하는 인턴이 한 명 있어서 준비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보자면, 첫날 재택근무로 시작을 할 것인지 사무실로 출근할 것인지 인턴의 매니저와 확인하는 것, 회사 시스템의 액세스가 준비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 길을 잃지 않게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이메일을 보내주는 것, 다 내 체크리스트에 속한다. 이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내년 신입사원 지원서류를 검토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다. 인턴 채용 계획이 없었던 부서의 2021년 인턴 채용이 급 결정된 것이다. 근 10년 동안 인턴을 채용한 경험이 없는 이 부서는 과연 어떻게 될까. 아마 상사 S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우리는 긴급 통화를 하고 전략을 대강 세웠다.




오후 1시 23분, 원래는 아침으로 먹으려고 했던 계란 프라이와 블루베리를 먹을 수 있었다.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블루베리를 씻을 겨를도 없이 오전이 훅 지나가버렸다. 아침엔 다행히 전에 간식으로 먹으려고 사둔 과자가 보이길래 일단 그걸 집어먹고 배를 진정시켰었다. 이렇게 폭풍은 저녁 7시까지도 계속됐다.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가 많이 한 것 같다. 특히 어제 상사 Q에게서 받은 목요일의 설명회에 관한 일을. 저녁 시간이 되니 배는 또다시 고파졌다. 식당에 전화해 볶음밥을 주문하고 픽업 가기 전까지 15분 동안 일을 더 했다. 그리고 식당에 가서 볶음밥을 픽업해 다 먹어버렸다. 양이 너무 많아서 평소엔 두 번 나눠서 먹는 볶음밥인데 한 번에 다 먹어버린 것이다. 하긴, 이게 오늘의 제대로 된 첫끼인 것 같다.


아침 8시 반에 켰던 컴퓨터는 10시에 꺼졌다. 일단은 침대로 다이빙을 했다. 몸 상태가 메롱인 게 느껴진다. 머리랑 눈이 너무 아프고 몸도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한다. 빨리 자고 싶었지만 결국 12시에 잠들었다.



2인분 같은 1인분의 볶음밥.







수요일: 채용설명회 1


아침 7시에 눈이 떠졌다. 9시에 설명회가 있어서 몸이 반응한 걸까.

8시 35분으로 설정해둔 알람이 울릴 때까지 더 자려다가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가고 싶어서 생각이 바뀌기 전에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마스크를 쓰고 운동하니 왠지 내일이면 입 주변에 여드름이 하나 추가될 것 같다. 카페에 들러서 아이스커피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를 깨끗이 해주시는 청소부 아저씨를 봤다. 이 날따라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집에 와서 씻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 책상에 앉으니 8시 40분이다. 채용설명회는 9시에 시작이다. 휴,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10시, 무사히 끝났다. 상사 Y는 신청자 수에 비해 참가자가 반도 안 되는 것에 대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흠, 내가 생각하기엔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시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일단 신청해둔 것 같다. 근데 그러면 까먹을 수도 있고 다른 일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니 꼭 참석해야 하는 부담은 없다. 참석하지 않아도 받는 타격은 거의 제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온라인 플랫폼의 한계인가 아니면 Z세대의 normality인가. (*Z세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 - 네이버 지식백과)


채용설명회라고 해서 “우리 부서에 지원하세요!”라고 말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우리 부서는 이런이런 부서입니다. 정말 이 일이 본인에게 맞다고 생각하면 지원하세요.” 가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였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워포인트는 없었고, 단지 이 부서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냥 들어봐야지’하고 참가한 학생들은 지루해서 도중에 나갔겠지만 어느 정도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인사이트를 얻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끝나고 온갖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휴식을 할 시간이 생긴걸 보니 전날보다는 낫다. 오후 2시, 닭가슴살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서 내년 인턴십에 지원한 학생들의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읽는다. 150명의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읽으니 눈 상태가... 내일 있을 설명회는 좀 복잡해서 걱정이 되지만 일단 모르겠다. 괜찮을 거야.



나의 to-do list.






목요일: 채용설명회 2


아침 9시, 이번 주의 두 번째 채용설명회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발표하는 분이 열정이 넘치셨는지 20분이나 overrun 했다. 높으신 분에게 약한 상사 Q. 진행자인 그녀가 나서서 막아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결국 뒤에 준비되어있는 부분들이 다 뒤틀릴 상황이 됐다. 뒤에 발표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스케줄이 있으니 하염없이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는 건데... 결국 휴식시간을 없애고 발표의 순서를 정신없이 다시 조율했다. 난리 날 뻔했지만 결국 어찌어찌해서 잘 해결되었다. 그나마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거라 좀 더 융통성 있게 바로바로 대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후 2시, 이날의 설명회는 끝! 밖에서는 천둥번개가 친다. 2시 반에는 회의가 있었는데 다행히 내가 말을 해야 하는 회의는 아니라 늦음 점심을 먹으면서 참가했다. 그 후 홍삼도 하나 섭취. 엄마가 매일매일 먹으라고 준 홍삼이지만 왠지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위해 세이브하게 된다.







금요일: 채용설명회 3


이번 주의 마지막 채용설명회는 아침 8시에 시작이다. 이 날의 설명회는 세팅이 복잡하다. Zoom의 breakout room 기능을 써서 매 15분마다 참가자들을 소회의실에 넣었다 뺐다해야하고, 발표를 맡은 분들의 비서들과 계속 스케줄을 확인해야 하고, 절! 대! 딜레이가 있으면 안 되게 세션들을 디자인해뒀기 때문이다. 전날 같이 20분이나 딜레이되는 상황이 생기면 큰일 난다. 하지만 복잡한 만큼 오늘은 나 혼자가 아닌 셋이서 진행요원을 맡는다. 셋이 손발이 척척 맞아서 다행히 오류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팀원들과의 팀워크가 좋아서 순조롭게 진행될 때의 그 쾌감이란! 매번 채용설명회를 마무리할 때마다 작품을 완성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주의 마지막 채용설명회를 마치니 긴장이 풀렸는지 졸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낮잠을 위해 누워보려고 했으나 이메일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결국 다시 모니터 앞으로 가본다.



점심 단골 메뉴.



이번에 처음으로 인턴을 뽑는 부서에 관해서 한번 더 회의를 하고 더 자세한 채용전략과 액션플랜들을 세웠다. 마케팅 용 leaflet을 만들었는데 부서 쪽에서 수정 사항이 계속 추가돼서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정말 디테일의 대마왕이다. Leaflet 하나 확인하고 고치는데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나중에 지원서류를 검토하고 면접을 진행하는 단계가 되면 어떻게 될지...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5시가 되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침대에 누워버렸다. 재택근무의 장점이다.

진짜 맛있는 거 먹고 싶다. 맥주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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