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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May 07. 2024

'詩가 나에게서 차츰 벗어난다'


  최근에 어느 지인은 요즘 내 글에 ”시(詩)가 많이 등장한다. “고 말합니다. 그것이 좋다는 뜻인지 진부하다는 뜻인지 말한 사람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시를 왜 쓰는가, 또는 시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천 명의 시인에게 천 개의 정의가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가장 포괄적으로 시를 정의한 사람은, 시를 매우 좋아했다는 공자입니다. 공자는 ”시를 읽으면 품성이 맑게 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이 통달되니 수양과 사고 및 정치 생활에 도움이 된다. “고 하였습니다. 공자의 정의에 의하면 시는 만병통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중에서 ‘정치 생활에 도움이 된다 ‘는 말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사물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사에 숨어 있는 이면까지도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덕목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 언어가 세련된다 ‘는 점도 주목하고 싶네요. 그런데 저보고 시의 정의를 말하라면 ’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쉽고 단순하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파블로 네루다는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제게로 찾아온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는 ”별들이 촘촘한 허공에 취해서 “인지, ”신비의 모습에 취해서 “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저 작가에게 찾아왔다는 것이지요.


  시는 천사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악마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을 쓸 수도 있고 좌절을 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시를 쓰는 것은 자연과 인간에게 내재된 원리를 찾아내어 삶을 보다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비가 내릴 때 시상이 많이 떠오르는데, 봄비는 봄비대로 생명을 숨 쉬게 하고, 여름비는 여름비대로 야성적인 힘이 있고, 가을비에는 사랑이 있고, 겨울비에는 낭만이 있습니다.


  시의 정의를 얘기하면서 김현승 시인의 말이 자꾸 저의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그가 한, ”처음에는 내 가슴이 나의 시였다. “, 그런데 나중에는 ”나의 시는 나에게서 차츰 벗어났다. “는 말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것저것 경험하고 내키지 않는 것까지 포용하다 보니까 ’나‘는 없어지는 게 아닌지 허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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