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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중한 '순간'들

by 염홍철


오늘은 입춘입니다. 원래 입춘은 봄을 시작하는 절기이지만, 요즘은 이상기후로 오늘부터 봄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소한 봄은 머지않았다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 긴 설 연휴를 끝내고 약간 무거운 몸으로 출근을 하는 날입니다. 그렇지만 설 명절의 단란했던 분위기는 뇌리에 남아있겠지요.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지내온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새삼스레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따스함과 소중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꺼풀이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찰나를 의미한다고 하지요. 명절에 가족들과의 만남 역시 어쩌면 소중한 순간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명절 때 만났다가 헤어진 가족과의 그 순간을 아직 음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순간은 비록 가족들과의 정겨운 시간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느끼고 있지요. 사무실 차창으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 새벽 걷기를 하다가 마주한 여명, 책 속에서 심금을 울린 어느 한 구절, 해피아워의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온 아리아의 한 소절, 당연히 절친들과 껄껄거리며 나누던 환담 등 모든 것이 그저 일상에 불과한 일이지만 소중한 순간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설 명절이 지났습니다. 그때 느꼈던 소중한 순간들이 사라지기 전에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아끼는 가족에게 고마움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보시지요. 전화도 좋고 카톡의 편지도 좋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 소중했던 순간을 소환해서 응축된 단어를 찾아내어 표현해 보시면 어떨는지요?


오세영 시인의 시로 설 명절의 순간을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이 시를 통해 깨끗하고 고요하고 여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새해 첫날은/ 빈 노트의 안 표지 같은 것/ 쓸 말은 많아도/ 아까워 소중히 접어 둔/ 여백이다/···새해 첫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여 하얀 산과 들,/ 그리고 물상들의 눈부신/ 고요는/ 신(神)의 비어 있는 화폭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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