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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자유

by 염홍철


꽃샘추위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입춘 추위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이 입춘이었는데 2~3일 동안 영하 10도 내외를 오르내리면서 강추위가 계속되었지요. 요즘은 ‘갑자기’ 겨울이 오고, ‘느닷없이’ 봄이 옵니다. 과거에는 사계절이나 3한4온이 분명하여 예측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날씨마저도 루틴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살면서 순간순간 사라져 간 것들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리발소’라는 이름의 촌스러운 간판, 그 안에 붙어있는 찢어진 매릴린 먼로 영화 포스터, 큰 길가의 공중전화 부스, 달걀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 신작로에 늘어선 전봇대, 우표가 붙은 손 편지, 털털거리던 타자기 등 그 시절에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나름 행복했습니다.


가족들의 전화번호마저 기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휴대폰에 이름만 치면 수많은 번호가 뜨지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의 숫자 암호를 저장해 놓으면 한 번 누르면 이미 발신 신호가 상대방에게 가고 있습니다. 뇌 기능의 대부분은 휴대폰이 대신해 주지요. 그러다 보니 어느 장소에 가나 최소한 1/3 이상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시려오지요.


뿐만 아니라 트렌드가 몹시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유행이 바뀌고 자고 나면 더 반짝거리는 것이 눈길을 잡아끕니다. 이렇게 발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좇다 보면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은 마치 꼭두각시가 된 듯한 피로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경 같은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에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방법은 이런 변화와 유행에 차라리 둔감해 버리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입었던 옷이 아직도 옷장에서 잠자고 있길래 용기를 내서 꺼내 입고 밖에 나갔습니다. 속도 모르고 만나는 지인마다 ‘그 옷 멋진데’라고 말해줍니다.


새것은 좋은 것이고 낡은 것은 창피하고 나쁜 것일까요? 당연히 젊음은 아름답고 나이 듦은 추한 것일까요? 이렇듯 숨 막히는 속도를 참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어느 시점에서는 멈춰 서서 뒤돌아보고 주변도 둘러보며 천천히 자신만의 보폭을 유지하며 걸어가는 것이 자신을 찾는 길이 아닐까요? 자유에 대한 제한이 수반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대체로 부자유스러울 때 잘 볼 수 있는 것이 자유스러워지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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