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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심판'을 받는다.

by 염홍철


요즘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법의 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별을 몇 개씩 단 현역 장성들도 많이 있지요. 이들은 유죄와 무죄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으며, 검찰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증거들을 내밀고 있고, 본인들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판결 내용과는 관계가 없이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두 가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문명과 종교의 핵심인 ‘마아트’를 연상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단순한 종교적 그림이 아니라 ‘인간의 운명과 신의 심판’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지금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심판하는 장면입니다. 오른손을 들며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키고, 왼손을 내리며 저주받은 자들을 지옥으로 보내는 모습입니다. 당연히 천사들에게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는 ‘부활하는 자들’과 지옥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지요.


마아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진리, 정의, 조화, 질서, 균형’을 상징하는 여신이자 개념입니다. 마아트는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를 유지하는 원칙입니다. 유일신 종교에는 사후세계에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는데, 그것이 ‘심판’이라는 것이지요. 심판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한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죄가 있는지 엄격하게 검사받는 것인데, 그 심사 기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만 부과된 특별한 ‘임무’가 있는데, 사후세계 심판자들은 무엇보다도 죽은 자가 자신의 임무를 알고 있는지를 심문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죄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배철현,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낮은 인문학> 17~27쪽 참조)


고대 이집트에는 구원이란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깨닫고 자신에게만 맡겨진 그 마아트를 이루려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마아트가 무엇인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얘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탄핵 재판 과정과는 직접 관계가 없으나,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언젠가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최후의 심판>과 ‘마아트’를 소환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심판자에게는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마아트의 핵심인 정의와 질서가 세워지고 지켜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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