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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보수와 진보를 다시 생각한다.

by 염홍철


지난주에는 헌정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믿고 있지만, 극도로 첨예화된 보수와 진보 세력의 대립과 갈등이 우려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국민의 잠재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나 경쟁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진보 진영 간의 갈등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는 국제적 기준과는 조금 다릅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좌파는 공산주의 신봉자, 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라는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특히 보수 측에서는 여전히 좌파는 ‘친북’ 또는 ‘빨갱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진보 측에서는 우파는 ‘독재’ 또는 ‘인권’과 ‘양극화’에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수와 진보 모두 ‘가치와 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지만, 국제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너무 좁은 시야와 구태(舊態)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한국의 보수는 아직도 냉전 시대의 안보 중심 사고에 매몰되어 있어 변화된 국제질서와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진보는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비판적 담론에 편중되어 있어 현실적 대안 제시보다는 비판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보수는 ‘자유’뿐만 아니라 공정성과 연대의 가치도 균형 있게 고려하고, 안보관도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진보도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책 설계를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장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성장의 과실을 사회 전반이 공유할 수 있는 ‘포용적 성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합니다.


사실상 보수와 진보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보수적인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강조하였고 집권 시에도 신자유주의와 배치되는 ‘사회적 경제’를 장려하였으며, 진보적인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한미 FTA를 앞장서 추진했습니다. 이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영국 정당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영국에서는 ‘보수’와 ‘노동’이라는 이념이 당명에 반영된 정당들이 활동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영국의 경우 양당은 보수와 진보의 정책이 상호 수렴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영국의 보수당은 공공주택 확충, 노동이사제 도입, 기업 경영진 보수 제한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반면 영국 노동당의 트위터에는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전통적 정책보다는 강간이나 혐오 형태를 비난하는 글이 더 많이 올라온다고 하지요.


이렇게 한국의 보수나 진보는 이념적 양극화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념 대결이 아니라 정책 경쟁과 서로가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담론, 예컨대 기후변화, 인구구조 변화, AI 시대로의 전환 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등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철 지난 이념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하지요. 앞으로 보수·진보 정당의 대변인들은 상대 당에 대한 논평을 할 때, 칭찬을 시작으로 주장을 끌어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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