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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유산

by 염홍철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베토벤을 꼽았습니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이 아닌 베토벤을 선택한 이유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도 건반에 귀를 바짝 대고 피아노를 치던 베토벤의 초인적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베토벤이 귓병이 나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었으니, 대부분의 작품들은 이미 난청 상태에서 작곡된 것이었지요. 베토벤의 난청은 급성중이염, 허약 체질, 구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힘들었던 외부 세계와 단절하기 위해 스스로 소리가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한 자해행위였다는 얘기도 들려오지요. 베토벤 자신도 “나의 잘 들리지 않는 청력은 어디에서나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힌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 230쪽) 막스 베버는 “질병으로 생긴 신체적 불구야말로 한 인간이 초인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토벤에게 난청은 초인으로 가는 통과의례였고, 그것의 최대 산물은 바로 아홉 개의 위대한 교향곡이었습니다.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 부릅니다. 성인(聖人)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라는 뜻이지요. 그러면서도 그를 천재라고 하지 않고 ‘위대한’ 작곡가라고 합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모차르트처럼 독창적인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해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30세 가까운 나이에 청력이 나빠졌는데 오히려 그때부터 좋은 작품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작곡한 ‘영웅’, ‘운명’ 등을 들으면서 ‘천재적’이라고 부르기보다는 훨씬 무게가 있는 ‘위대한’ 음악가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곡가로서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지요. 이러한 고통을 극복하기 어려워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까지 썼지만 그래도 57세까지 살면서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베토벤 광’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그 장면, 소리를 듣지 못하면서도 건반에 귀를 바짝 대고 피아노를 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 ‘합창’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정작 자신은 듣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베토벤, 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베토벤을 발견합니다. 청각 장애가 없었더라도 베토벤을 ‘위대한’ 음악가라 부를 수 있었을까요? 특히 제9번 교향곡의 마지막 화음이 울리고 나면 환희에 취한 청중은 이미 정상 상태에서 벗어나 있음은 동서고금의 공통적 현상입니다. 또한 “오, 벗들이여!”로 시작하는 실러의 시와의 결합은 프랑스혁명을 예술로 응답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힘으로 베토벤 음악은 우리에게 ‘극복의 아이콘’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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