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안전불감증’에 대해서 아침단상을 썼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정상성 편향’을 지적했는데, 그것은 인간은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으면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을 말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위험은 ‘아직은 아닌’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 의식에 파고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자신이 항상 안전할 것이라 믿는 심리는 더 깊은 층위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은 사고가 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를 움직이는 더 깊은 착각은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곳에 있습니다. 임기가 분명히 정해진 자리임에도 마치 영원히 지킬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자신만은 아직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는 태도는 단순한 안전불감증을 뛰어넘는 현상이지요.
이것은 위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유한성 인식의 문제입니다. 인간은 변화와 종말을 알면서도 그것을 ‘아직은 아닌 일’로 미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는 정상성 편향은, 사실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무기한 연기하고 싶어 하는 심리의 한 표현입니다. 자리는 언젠가 내려와야 하고, 생명은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현재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지요. 권력을 잡은 사람이 언젠가, 또는 몇 월 며칠 그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한다면, 실수를 줄이거나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권력은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착각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일상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자리는 곧 존재가 되고, 내려오는 순간은 퇴장이 아니라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의 직위, 역할, 제도, 관성에 파묻혀 자신의 유한성을 망각하는 것이지요. 죽음 역시 마찬가지지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작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끝내 실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유한한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을 예외로 취급하는 것이지요. 인간은 논리적으로는 죽음을 알지만 정서적으로는 자신만은 예외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 아니라 인식입니다. 사고는 예외 없이 오지만 종말은 늘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합니다. 안전불감증의 뿌리에는 ‘아직은 아닌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는 것이지요.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위험 앞에서도, 권력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늘 방심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다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권력이나 생명도 끝이 있고, 그 시기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후회하게 됩니다. 후회할 그때는 이미 늦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