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지(冬至)였습니다. 이십사절기 중 하나지만, 동지는 다른 절기들과는 조금 다른 무게를 지닙니다. 절기라기보다는 ‘시간이 방향을 바꾸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인지 나이 들어 맞이하는 올해의 동지는 저에게도 남다른 감회와 각오를 다지게 하네요.
동지는 북반구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입니다.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순간이지요. 모든 것이 줄어들고, 움츠러들고, 멈춘 것 같이 보이는 시점입니다. 그러나 이날을 지나면 낮의 길이는 다시 아주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입니다. 그래서 동지는 어둠의 절정이자 빛이 돌아오는 출발점입니다.
옛사람들은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동지를 단순한 계절의 한 지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음양 사상에서 동지는 음이 극에 달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음이 극에 달하면 그 안에서 양이 싹튼다고 보았습니다. 가장 차가운 순간에 이미 따뜻함의 씨앗이 들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끝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시작이라는 인식이지요.
그래서 동지는 ‘작은설’이라 불렀습니다. 즉 아세(亞歲)라는 것이지요.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자연의 시간은 이미 한 번 돌아섰다고 여겼습니다. 관청이나 직장에서는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고 사람들은 마음을 다듬었습니다. 인간의 시간보다 자연의 시간이 먼저 새해를 열어준다는 겸손한 태도였습니다.
동지 하면 떠오르는 팥죽 역시 이런 인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붉은팥은 잡귀를 물리치는 색으로 여겨졌고, 팥죽은 집안의 액운을 씻어내는 의례적 음식이었습니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불안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마음의 행위였습니다. 이런 인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지를 중요한 날로 여겨왔습니다. 중국에서는 ‘겨울의 큰 명절’로 여겼고, 유럽에서는 동지 무렵을 ‘태양의 부활’을 기념했다고 합니다.
동지는 말없이 알려줍니다.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다만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왔을 뿐이라고. 그리고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동지를 계기로 우리 사회나 제가 나가는 학교 그리고 저 개인에게도 바람직한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늘의 동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지금은 믿음의 시간이라고. 가장 어두운 날이 지나야 비로소 방향이 바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