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하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by 염홍철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 문을 여는데, 문고리에 조그만 봉투가 하나 있고 그 안에는 ‘쓰레기봉투’ 몇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짧은 편지도 있었지요. 그 편지는 “안녕하세요. 000동 000호 예비 입주민입니다. 입주 전, 부득이하게 내부 공사를 하게 되어서 소음 등으로 큰 불편을 끼치고 있습니다. 뭐라 말씀드릴 수 없을 정도로 죄송합니다. 폐기물 및 분진 등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공사를 빠르게 마무리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십시오. 앞으로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댁내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그 댁에서 내부 공사를 한다는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 게시한 공지문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편지와 함께 아주 유용하게 쓰일 ‘쓰레기봉투’까지 선물로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저 스스로가 훈훈해졌습니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이웃사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웃이 사촌보다 더 자주 보고 더 먼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뜻하지요. 농경사회에서 이웃은 단순한 거주자가 아니라 삶의 일부였습니다. 논에 물이 모자라면 함께 물꼬를 돌려주었고, 집안일이 바쁘면 서로 품앗이를 했습니다. 김장할 땐 이웃들이 모여 같이 해주었고, 집에서 떡이라도 하면 이웃과 같이 나누었지요.


그러나, 현대의 풍경은 다릅니다. 도시의 삶은 프라이버시를 강조하고, 아파트의 구조는 사람을 층과 벽으로 분리시켰습니다. 이웃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고, 각자의 문 앞에서 관계는 멈추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의 관계는 늘어나지만 바로 옆집의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도 흔합니다. 오히려 층간소음과 주차 문제 등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지요. 이렇게 이웃 간 왕래가 줄어들자, 공동체 감각은 점점 희미해지고 작은 갈등에도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웃사촌’이라는 오래된 말이 던지는 의미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거창한 운동이나 대단한 이벤트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는 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하루 한 번의 인사, 명절에 떡 한 조각 나누는 일, 고장 난 물건을 함께 고쳐보는 일, 이러한 사소한 나눔이 반복될 때 이웃은 다시 얼굴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단순한 속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오래된 지혜입니다. 우리는 다시 이 말을 삶 속에 불러들여야 합니다. 아파트 내부를 수리하는 집에서 온 따뜻한 편지 한 구절을 접하면서 이웃사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우리 닫힌 문 사이에 아주 작은 틈 하나를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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