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89년에서 1990년까지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대표로, 북한과 협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끈질기게 ‘두 국가론’은 분단 고착시키는 것으로 민족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1991년에 남북이 동시에 UN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질서 안에서 두 주체가 병존하는 현실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때 등장한 것이 ‘남북기본합의서’(1992년 발효)인데, 이 합의서는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로 못 박지는 않으면서도 서로를 사실상 상대 주체로 인정하고 관리하는 틀을 만들었지요. 남북기본합의서 제1조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습니다. 그 후 남북 관계는 많은 변천이 있었지요.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고 있지요.
그런데 김정은은 2023년 말, 갑자기 남북 관계를 동질적 민족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또는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노선을 바꿨고, 2023년 10월경 북한은 헌법을 개정해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렇게 북한의 두 국가론은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가 아닌 국제관계로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헌법적 함의를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통해, 한반도의 단일 국가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헌법 전문과 제4조의 평화적 통일 조항과 결부되어 분단의 잠정성을 헌법 질서 내부에 내재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남한을 외국으로 규정하고, 통일 노선을 폐기한 이상 헌법 제3조는 더 이상 상호 인식에 기반한 규범이 아니라 일방적 선언의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평화협정 체결, 상호 국가 인정, 적대행위의 법적 성격 등에서 헌법과 현실 간 충돌 가능성이 부정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 개정 논의는 통일 포기 문제가 아니라, 통일 전제를 어떻게 유지하거나 재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두 국가 인정 여부’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헌법이 통일을 최종 목표로 유지하면서도 장기적 분단 관리 체제를 수용할 수 있는 규범적 장치를 마련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학술적으로 이는 ‘헌법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의 긴장 관리’라는 고전적 문제로 귀결됩니다. 통일조항을 삭제할 경우 국가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현행 조항을 유지한 채 현실을 외면할 경우 헌법의 실천 규범성은 약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향후 논의는 통일을 목적이 아닌 방향성으로 재정의해야 하고, 어제 단상에서도 얘기했듯이 분단 상태에서의 ‘평화’를 헌법적 가치로 보강하는 방식으로 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통일 논의에서 우리는 종종 독일과 베트남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독일처럼 흡수통일도, 베트남처럼 전쟁으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통일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통일을 말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통일을 전제로 한 헌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통일은 당장의 목적이 아니라 방향이어야 합니다. 분단을 관리하되 분단에 안주하지 않을 것, 그것이 독일도, 베트남도 아닌 한국 헌법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