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나

by 염홍철



우리는 보통 하나의 ‘나’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판단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마음속에는 조금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도 문득 “내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 안에서 또 다른 내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영국의 심리치료사 필립파 페리(Philippa Perry)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관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삶은 감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인간이 어떤 결정도 내리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뇌과학 연구에서도 감정을 담당하는 뇌 기능이 손상된 사람은 논리적 사고는 가능하지만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의 판단은 이성과 감정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철학의 역사에서도 이러한 자기 관찰은 오래된 주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며,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은 욕망과 감정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의 자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경험하고 행동하는 ‘나’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입니다. 우리는 ‘나 화났어’라는 표현도 하지만, ‘나는 화를 느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렇게 분노라는 감정과 자신을 한 덩어리로 묶지 않고 분리한 표현입니다. 자신을 감정과 분리하는 것이지요.


아마도 우리가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거창한 능력을 얻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만 삶의 어느 순간, 조용히 멈추어 서서 마음속에서 이렇게 말할 힘일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어쩌면 인간의 깊이는 바로 그 ‘두 번째 나’가 깨어나는 순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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