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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17. 2024

왜, 다양성 확보가 중요한가?

최고 다양성 책임자(CDO)가 필요한 시대

19세기 섬나라 아일랜드는 감자 대기근(The Great Famine)으로 인구 800만 명 중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은 고향을 떠나 이민을 갔다. 그때 아일랜드 농민들은 감자 말고는 대체작물이 없는 상태에서 감자 생산량을 늘리려 감자를 촘촘히 심었고 이 탓에 감자마름병이라는 흰 곰팡이균이 감자밭을 덮쳤다(이 감자 전염병은 뉴욕에서 발원되어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감자를 다른 품종의 작물과 함께 심거나 해를 걸러 심은 유럽 대륙에서는 큰 피해를 면했다.


아일랜드 비극은 국민의 주식이 된 감자 생산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에서 비롯되었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같은 땅에 심은 단일 품종의 감자가 병해충에 취약해진 탓이다. 단일재배의 결과이다. 감자는 2천 종이 넘는다고 한다. 만약 아일랜드 농민들이 다양한 종류의 감자를 심었다면 비극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일랜드 농민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농민들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극대화하고 싶은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품종의 유전자 분석 등 과학기술로 단일재배의 문제점이 밝혀진 오늘날에도 농민들은 하나의 품종을 단일재배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단일재배를 하면 수확하기가 쉽고, 품질이 좋고, 생산성이 높아 경제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단일품종, 단일재배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생산성과 효율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유전자를 가진 식물을 재배하지 않고 단일 품종을 계속 재배하면 생물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쉬운 길에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생태계에서 생물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다. 생물 다양성이 생태계의 존속을 지속적으로 보장한다.


현대의 기업이나 교육기관에서도 생물 다양성을 응용하고 있다. 최고 다양성 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 CDO). 기업이나 교육기관에서 다양성 전략을 수립하는 숙련된 임원이다. CDO는 조직이 성별, 피부색, 출신 국가, 종교, 인종, 문화, 연령 등 다양한 배경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되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CDO는 조직의 구성원이 각자의 고유한 경험, 능력, 배경을 함께 활용하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접착제, 살충제, 홈키파 등을 생산하는 독일의 기업 헨켈(Henkel)은 임직원 국적이 120곳에 이른다.


정부 관료 출신의 웃지 못할 회고담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KS라고 부르던 경기고,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관료는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경제부처 관료를 지냈다. 법조계는 서울대 법학과, 경제계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정통 관료로 여기던 시절에 사대를 졸업하고 경제 관료가 되었으니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출근 첫날 부처 과장이 자기소개서를 보고 출신 대학이 '서울대 상대'일 것인데 '이응' 받침을 빠뜨려 사대로 잘못 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관료가 사범대학이 맞다고 했더니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부 관료 출신의 웃지 못할 회고담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KS라고 부르던 경기고, 서울대 출신을 선호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 관료는 서울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경제부처 관료를 지냈다. 법조계는 서울대 법학과, 경제계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정통 관료로 여기던 시절에 사대를 졸업하고 경제 관료가 되었으니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출근 첫날 부처 과장이 자기소개서를 보고 출신 대학이 '서울대 상대'일 것인데 '이응' 받침을 빠뜨려 사대로 잘못 쓰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관료가 사범대학이 맞다고 했더니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직이 다양성을 갖추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조직 구성원의 배경이 다양할수록 조직은 문화적으로 민감하다. 다양성은 기업의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각자의 고유한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혁신적으로 사고하고 문제 해결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 한국인의 관심을 끄는 광고를 만들고자 할 때 한국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면 훨씬 더 공감적인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협업을 하다 보면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 구성원 각자의 독특한 삶의 경험과 관점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양성은 기업에 대한 평판을 높인다.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구성원이 다양한 인종과 피부색을 배경으로 한다면 전 세계인이 구매할 수 있는 구매욕구를 강화시킬 것이다. 


정부 관료 출신의 이야기를 소개했지만, 정부 조직에도 다양한 출신 대학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로 채워야 한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출신끼리 모여있으면, 즉 학교 선후배의 학연(學緣)으로 구성된 조직은 사고의 틀에 갇혀 '노'라고 말하기 어려운 조직이 되고 말 것이다. 광활한 지리적 배경에 3천 개가 넘는 미국의 대학에서 교수를 채용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은 학문의 다양성이다. 우리나라 대학처럼 동일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한 후보자보다는 학사는 동부를 나왔다면 석사는 서부, 박사는 중남부에서 공부한 후보자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다(저자의 경험으로는 학사를 마친 대학에서 석사 또는 박사를 마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해외 유학자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었다).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 본교 출신과 타교 출신을 섞는 것을 선호한다. 동질성이 강한 동종교배(inbreeding)보다는 이질성이 강한 이종교배(cross-breeding)가 학문의 폭을 깊게 하고 분야를 넓게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혼혈 파워, 즉 순종보다는 잡종이 강한 법이다.

 

저자가 우려하는 제도가 있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시행하고 있는 지역인재선발 제도다. 이 제도를 뒷받침하는 법률은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과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이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은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 및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이 법률에 근거하여 수도권 이외 지방대학에서는 학생 전체 모집 인원 중 일정 비율 이상을 해당 지역 학생으로 선발하도록 하였다. 지역인재의 지방대학 입학기회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다. 2015년 대학입시부터 실시하게 될 지역인재전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부(의과, 한의과, 치과, 약학과 등)는 30%, 전문대학원(법전원, 의전원, 치전원, 한의전원)은 20% 이상을 지역인재로 선발해야 한다(강원권과 제주권의 경우 지역의 여건을 고려하여 학부는 15%, 전문대학원은 10% 이상을 지역인재로 선발해야 한다).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도 지역인재 채용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 법률에 따라 수도권에서 혁신도시와 세종시 등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은 전체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지역인재로 채용하도록 강제했다. 이 특별법의미하는 지역인재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그 기준은 간단하다. 바로 '졸업대학'이다. 졸업한 대학이 수도권 이외 지역의 혁신도시에 소재하고 있으면 된다. 초중등학교를 혁신도시에서 다니고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면 지역인재가 아니다. 반대로 초등학교 또는 중등학교를 서울에서 졸업하고 혁신도시 소재 대학을 졸업하면 지역인재다. 전남 나주시에서 태어나 초중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이나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면 '광주전남혁신도시(나주시)'에 위치한 한국전력공사에 지역인재로 입사할 수 없다. 수도권뿐 아니라 충청권, 영남권, 강원권 등 다른 권역 소재 대학에 진학했어도 지역인재는 아니다. 지역인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전남대 등 전남 소재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2022년도의 경우 비수도권 소재 163곳의 공공기관에 신규 채용된 지역인재 6,640명 중 공공기관 소재지 권역 고등학교 졸업자는 2,074명(31.2%)으로 나타났다). 혁신도시 지역 대학 출신자를 선발하다 보니 특정 대학 쏠림현상이 심각하다. 전북혁신도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지역인재채용 인원 중 전북대 출신이 70%가 넘는다고 한다. 부산혁신도시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부산대 출신이 60%에 달하고, 경남혁신도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경상대가 70%에 육박한다.


현행 지역인재 육성 및 채용법은 강력한 할당제(Quota System)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조직에 출신 대학이 같은 구성원이 많으면 어떻게 될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학연(學緣)으로 맺어진 파벌 형성 가능성이다. 파벌이 형성되면 특정 집단이 되고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학연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인재채용법이라는 법을 시행하면서 공공기관에서 공개적으로 파벌 형성을 강화시켜 주고 있다. 무엇보다 할당제는 조직의 다양성에 역행한다.


할당제와 관련하여 내려진 기념비적인 판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7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캘리포니아주립대(UC, Davis) 의과대학원에 지원했다 탈락한 바케(Bakke)가 제기한 소송에서 특정 인종의 비율을 정해 놓은 할당제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때에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는 소수인종우대정책의 일환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지원자에 대한 할당제를 적용하는 입학정책을 시행했다. 다양한 인종으로 학생을 구성하고자 함이었다. 연방대법원은 대학입학에서 특정 인종을 위한 할당제는 헌법에 보장된 다른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사회 구성원 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여 사회통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이때만 해도 연방대법원은 할당제에 대해서는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입학전형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 중 인종을 하나의 요인(a factor)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바케 판결 이후 그 맥락을 나란히 하는 소송들이 제기되었는데, 소송의 요지는 '뛰어난 학업성취에도 불구하고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로 대학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2023년 6월, 연방대법원은 대학입시에서 인종(race)을 하나의 요인으로 고려하는 것조차 위헌으로 판결했다(이 판결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시행해 온 '소수인종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 종지부를 찍었다).


혁신도시 소재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지역인재에서 제외되는 것은, 마치 특정 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미국 대학입시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무엇보다 미국의 소수우대정책은 대학에서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지역인재 할당제는 관련 법률이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다양성 확보에도 역행하고 있다. 다양성은 자연계와 인간계에서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자연계에서 감자의 단일재배가 아일랜드의 비극을 초래하였듯 인간계에서 과도한 동질집단의 구성은 역기능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할 일이다.



고현곤. (2024). 중앙일보. 그들만의 참호에 갇힌 윤석열 정부. 4월 23일.

김범주. (2024). 뉴스핌. 2028학년도부터 중학교 졸업해야 '지역인재' … 의대 파장에 '지방유학' 늘까. 2월 12일.

나상현. (2024). 중앙일보. 공공기관 지역인재 합격 69%가 타지 고교 출신. 4월 17일.

박중환. (2015). 부산일보. 감자, 아일랜드와 미국을 바꾸다. 10월 19일.

이수웅. (2024). 조선일보. 평등, 다양성 앞세운 미국 아이비리그의 추락. 4월 6일.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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