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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y 07. 2024

나의 계로록(戒老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은 스테디셀러다. 나이가 들면서 관심을 가질만한 다양한 주제에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이가 어느 정도 들게 되면 저렇게 행동해야겠구나' 또는 '저렇게 행동하면 안되겠구나'라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저자도 <노인교육개론> 강의에서 본론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에게 한두 개 주제를 화두로 이야기하면 아이스브레이킹 소재로 그만이다.


<<계로록>>은 크게 '엄중한 자기 구제', '생의 한가운데에서', '죽음을 편안하고 친숙하게'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마음에 와닿는 몇 가지 주제를 꼽자면 아래와 같다(마음에 와닿는다는 것은 이제부터라도 저자 자신이 잘 지키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첫째, '엄중한 자기 구제'편에서는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음을 시기하지 않을 것, 젊은 사람을 대접할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불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보편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최고 연장자가 되어도 자신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둘째, '생의 한가운데에서'편에서는 '손자를 돌보아줄 것, 그러나 공치사는 하지 않을 것' '교제 범위나 매너를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지 말 것' ''돈'이면 다라는 생각은 천박한 생각'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인사치레는 포기한다'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동물은 기르지 않는다' '건강 기구나 약 등을 타인에게 무턱대고 권하지 말 것'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패의 변명 거리로 삼지 않을 것' '무언가 말을 남기고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버린다' 등이다. 셋째, '죽음을 편안하고 친숙하게'편에서는 '재미있는 인생을 보냈으므로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로 늘 심리적 결재를 해둔다' '덕망 있는 노인이 될 것' '노년을 특수하거나 고립된 상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의 죽음이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노력한다' 등이다. 하나 같이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특히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라는 말에는 100% 수긍이 간다. 노인이 되면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있지만 이 혜택이 노인에게 부여된 특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계로록은 글자대로 보면 '늙음을 경계'하는 기록이지만 의역하면 '나이 들어서는 저렇게 해야겠구나' 또는 '저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의미를 가진 노인을 위한 금과옥조(金科玉條)라고 할 수 있다. 저자도 넉넉히 잡아 90세를 산다고 가정할 때 3분의 2 이상을 살아온 만만치 않은 나이줄에 들어섰다. 나만의 계로록을 만들고 실천할 때가 되었다. 나이 들어 행동 지침서를 마련하고 스스로 생각과 행동을 경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누군가는 10대도 아니고 그 정도 나이가 먹었으면 지침서 같은 것이 없어도 이제까지 수없이 반복된 생각이나 행동이 습관처럼 굳어졌을 터인데 굳이 지침서를 만들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할지 몰라도 모르는 소리다.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이던가. 자기만의 실천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공포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감도 높이고 사회적으로도 시니어로서 존경받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하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계로록>을 참고하고 저자가 생각해 둔 실행 계획을 열두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자 한다. 이들 중 몇 가지는 지금도 잘 지키고 있는 항목도 있지만, 다른 몇 가지는 더 많은 노력과 지속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것도 있다. 실행 계획은 노력하기만 하면 실천이 가능한 내용이다. 저자의 성격과 의지의 정도 그리고 이제까지 시도하면서 경험했던 시행착오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실천하지 못했을 경우에 찾아오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무기력을 미리 고려하였다. 인간은 철저히 이기적인 자기보호본능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다.


첫째,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다. 건강에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있다.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는 책이나 신문 등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서는 뇌를 활성화시키는 최고의 보약이다. 지적으로 나이 들고 싶다. 이제부터라도 많은 분량을 빨리 독서하는 것보다는 천천히 씹어먹는 독서를 해야겠다(저자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 전자책은 화면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안구건조증을 악화시킨다. '전자책이 한 알의 영양제라면 종이책은 맛있는 한 끼의 식사'라는 말도 있다). 음식을 먹을 때 입속에 많은 양을 넣고 빨리 먹으면 문제가 생기는 이치다(음식을 급하게 먹는 것은 역류성 식도염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독서도 적은 양을 천천히 오래 씹으면서 소화해야 한다). 충분히 음미하고 성찰하면서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100세 장수사회에서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본보기 역할을 하고 계신 김형석 명예교수(104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장하는 동안 사람은 늙지 않습니다. 반대로 성장이 멈추면 40대에도 늙을 수 있다.” "성장을 계속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지식이 늘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감성을 젊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 교수는 젊은 마음을 가지려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한다. 여든을 넘긴 원로 모임에 초청받아 간 적도 있지만 거기 앉아 있다간 늙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나가고 그만뒀다고 한다.


신체적 건강을 위해 달리기와 근력운동을 병행할 것이다. 달리기는 일주일에 2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매 회마다 6~7km를 달린다. 물론 관절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팔 굽혀 펴기는 하루 60회를 하는데 아침저녁에 각각 30회를 한다. 약한 허리를 위해 1시간 단위로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좌우로 돌리는 등 몇 분 동안 움직인 다음에 의자에 앉는 습관을 실천한다. 신체 중심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중심근육(코아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플랭크(plank)를 한다. 초보단계이므로 1분 1회씩 3회를 한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항목이다. 저자의 건강포트폴리오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스트레칭 등으로 구성된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말은 저자에겐 '긴급명령'이다.


둘째, 가족에게도 말을 가려 하자. 저자는 가족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감정관리에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 '그 순간'을 참지 못해 사달을 내고 만다.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는 보이지 않는 지뢰밭이 있는데 그 지뢰를 밟고 만다. '그 순간'만 넘기면 만사형통인 것을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공든 탑이 '욱'하는 감정으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허물없는 관계가 가족이지만 나로 인해 긴장감이 감돌고 평화와 사랑이 넘쳐야 할 가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 특히 나이 먹을수록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은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부끄럽고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리더십은 위기 때 발휘되는 법이라고 한다. 감정을 쉽게 노출하면서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위기를 자초하지 말자.


셋째, 공공장소에서 에티켓을 지키자. 기차, 전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보면 나이 많은 시니어가 옆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나이가 먹으면 난청(難聽)으로 자신이 말한 내용을 잘 듣지 못해 목소리가 높아진다고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살펴야 한다. KTX 등 기차에서는 객석 밖으로 나가 통화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또한 고령자에겐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카톡~'소리와 같이 메시지 알림음은 진동으로 하거나 아예 묵음처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도 대화의 분량을 최소화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간혹 승무원을 통해 조용히 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 또한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이 들어서는 밀폐된 공간에서 누군가의 소음과 불편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불편하게는 하지 않는지 살필 일이다. 남을 흉보면서 스스로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일이다.


넷째, 나이 태(態)를 내지 말자. 사전에서 태는 '아름답고 보기 좋은 모양새'라고 하지만, 나이 태를 내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는 철부지 노년이다. 아무리 고령장수사회라고 하나 외모나 말투를 보면 대강 짐작해도 상대의 나이는 알아차릴 수 있다. '나이는 지위나 자격이 아니다'라는 말을 새겨야 한다. 누구나 세월과 함께 나이를 먹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나이는 올라간다는 점에서 '나이가 찬다' 또는 '나이가 들다'와 같은 말을 사용한다. 외부회의에 가게 되면 여러 위원 중에 위원장을 선임하게 되는데 선임기준은 나이다. 나이가 많으면 위원장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높다. 위원회의 장을 나이 순으로 선임하는 것은 편리한 회의 진행을 위한 임시방편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 사람보다 경험이나 지혜가 많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사례처럼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느 자리에서나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양보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에 있다.


다섯째,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존중하자. 노년이 되면 오랫동안 굳어진 생각과 생활방식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생활해 온 방식을 고집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살아보니 그것은 이렇더라'라는 말이다. 자기만의 고집과 자기만의 생활방식을 지고지선로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거나 다르게 살아가는 것을 인정하기보다는 그런 사실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생활하는 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것은 교만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섯째, 새로운 기계의 작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자. 노년이 되면 새로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여 기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교체하지 않으려는 것은 제품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보다는 새로운 기계의 작동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기계를 구입하고 그 작동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노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의 경험을 사례로 들어본다. 아주 오래된 드라마 <구암 허준>을 텔레비전에서 다시 보려고 하는데 모 통신사에 회원가입을 하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인증과 결제 절차를 마치고 시청할 수 있었다(리모콘으로 영문자와 특수문자를 하나하나 누르는 절차가 복잡해 몇 번 시행착오를 겪었다).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은 욕구는 그런 복잡한 절차에 대한 거부감으로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다. 인내심을 가지고 정해진 순서를 차분하게 따라 한 결과 시청할 수 있었다. 세상은 편리한 기술의 진화에 따라 다양한 기계가 출시되고 있다. 노년기에 반드시 필요한 기계가 있을 수 있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기계가 있다. 반드시 필요한 기계는 작동법을 정확히 숙지하여 편리함을 누려야 할 것이다. 사회변화와 기술발전에 적응하는 것은 잔잔한 성취감과 함께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일곱째, 집 안에서는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기르지 않는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노년에 그들을 키우는 것은 많은 위로와 기쁨을 다. 가족 이상의 친밀감과 애착을 가지게 된다. 저자도 사람 나이로 100세가 넘은 반려견을 기르고 있다. 문제는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려견은 하루에 최소 두 번은 산책을 하고 대소변을 해결해야 한다. 외출해서도 그의 생리작용에 맞춰 급히 집에 와야 한다. 집 말고 다른 곳에서 잠을 자거나 며칠 여행을 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한다. 특히 반려견의 나이가 많으면 나이 많은 노년과 똑같은 신체노화를 겪게 된다. 관절염, 피부노화, 배설의 어려움, 난청, 치아 관리 등 노년이 노견(老犬)을 케어해야 하는 노노(老老) 케어 현상이 벌어지고 만다. 노년에 자신도 케어하기 힘든 상황에서 반려견까지 돌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저자도 현재의 반려견과 이별하면 더 이상 입양하지 않을 것이다. 반려묘는 집 안에서 키우지 않고 밖에서 기를 생각이다. 반려묘를 집 밖에서 키우면 상대적으로 케어가 단순하고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여덟째, '라떼는 말이야'를 자제한다. 사람이 나이를 먹게 되면 과거회상적이 되기 쉽다. 어느 상황에 부딪치게 되면 '과거에는 이렇게 했는데......'라는 말을 하면서 불필요한 상황을 만든다. 최근 장례에서 경험했던 사실이다.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함을 선산의 봉분에 모시려고 하는데, 고인과 일가친척되는 분이 '그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유골함을 열어 유골과 흙을 섞으려고 했다. 유골함은 진공상태로 밀폐되었는데도 뚜껑을 억지로 열려고 했다. 상주가 말려 중도에 포기했지만,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 중 가장 연장자였던 그분의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스타일 구긴 일이었다. 장례 전문가가 현장을 지휘하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라떼는 말이야'가 일을 그르칠 뻔했다. 만약 상주와 연장자 사이에 언쟁이라도 일어났다면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것이다. 남의 말에 끼어들어 과거적 이야기를 늘어놓지 말자. 우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 뒤 그 사람이 의견을 물어왔을 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다.


아홉째,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에 감사하자. 언제부턴가 9시 이전에 잠을 잔다. 부친이 9시 뉴스를 보면서 주무시는 것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 저렇게 되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자는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습관이 되다 보니 10시 이후에 잠을 자려고 하면 한참만에 잠이 든다. 습관이란 이렇게 엄격한 법이다. 습관이란 제2의 천성을 넘어 나의 자아를 결정짓게 된다. 일찍 자다 보니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눈을 떠보면 4시 언저리다. '저녁에 잠들어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면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희귀한 사례일 것이다. 새벽에 눈을 뜨는 것에 감사하자. 눈을 뜨면 물을 한 컵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화장실을 갔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이때 머리가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생각의 거품이 가라앉고 진액만 남아있다. 저자의 경우에는 낮에 쓴 글을 이때 많이 수정한다. 매일 아침 눈이 떠지는 것에 감사한 생활을 하다 어느 날 눈이 떠지지 않으면 최고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요즘 '99881234'에 비교되지 않을 것이다.


열 번째, 죽음에 대해 심리적 결재를 해두자. 저자는 이상하리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이다. '내일 죽어도 괜찮다'라고 말하면 교만이겠지만 두려움은 적은 편이다.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한 심리적 결재를 했다(아마 부모님과 이별을 한 뒤부터 그런 마음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결재를 마쳤어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심리적 결재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많은 연관이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자면 원고지를 여러 장 할애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학생들에게 늘 인용하는 잠언이 있다.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지만 사람들은 기뻐했다. 네가 죽을 때에는 사람들은 울지만, 너는 기뻐하는 삶을 살아라." 이 잠언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다. 저자는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다면 환하게 웃음 지으며 살아있는 사람들과 작별하면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사랑할 수 있어서 고맙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 고맙다"라는 말과 함께.


열한 번째, 종교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고 실천하자. 영적 건강에 대한 실천이다. 저자는 종교의 편협적인 교리에 염증을 냈다. 자기의 종교만이 정답이라고 하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어떤 사람은 편협한 교리를 집착하는 것은 "율법에 갇혀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human)은 흙으로 빚어졌고 최후에는 흙으로 돌아간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놓고 보면 종교에 대해 마냥 손사래를 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장례식에 가면 고인(故人)이 기독교, 천주교, 불교 중 하나의 종교에 귀의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사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생의 목표는 있는데 사후의 목표가 없다고 생각하니 죽음 이후의 나는 공허함과 존재의 부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교회나 성당이나 불당에 꼭 가야 하느냐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것에는 형식과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의식을 치르는 가운데 교리의 본질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내세에 대해서도 신념이 단단해질 것이다. 불완전하고 나약한 존재로서 인간이 의지할 최후의 집은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다.  


열두 번째, 이웃과 지역사회에 유용한 존재로서 역할을 하자.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 소중하지만 다른 사람, 이웃, 지역사회에 더 소중한 존재로서 기억될 수 있다. 나의 작은 존재가 세상에 가치를 더해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호수의 물결이 중심에서 점차 외부로 확장되는 것처럼, 개인의 영향력도 자신뿐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로 확장될 수 있다. 선한 영향력이다. 특히 농촌의 마을공동체에서는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도로변의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씨앗을 파종, 관리하거나 수확할 때의 노하우와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도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요 기여다. 우리 한국인이 아직도 정(情)이 많고 민족 고유의 전통이 계승될 수 있는 것은 지역사회의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구감소가 아니라 인구소멸을 우려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다. 노년은 현대와 전통의 조화로운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청년들이 살고 싶은 마을로 변화시키면서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현대인들은 너무 오래 살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기대수명이란 '0살'인 출생아의 기대여명이다. 2020년에 태어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평균 83.5살이다. 남자는 80.5살, 여자는 86.5살이다. 50년 전인 1970년에는 남자는 58.7살, 여자는 65.8살로 평균 62.3살이었다. 50년 새 수명이 21.2년이 늘었다). 오래 사는 것(장수)은 반드시 축복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장수의 전제조건은 건강하고 의미 충만하게 사는 것이다. <나의 계로록>은 장수가 축복이 된 노년, 자존감을 가진 노년, 사회적 존경심을 잃지 않은 노년을 보내고 싶은 저자의 계획을 담은 실천목록이다. 실천목록을 작성한 것만으도 몸도 마음도 뿌듯하고 활기차고 아름다운 노년으로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부터는 실행에 집중하고 실행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실천항목을 더 발전적으로 수정해나갈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라고 한다. 저자도 <나의 계로록>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더 반짝이게 하고 싶다. 가족, 친구여! 오늘부터 시작하는 <나의 계로록>을 관심있게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기 바란다. 저자에게 노화(老化)는 노화(老花), 즉 나이 들어 피는 아름다운 꽃에 다름아니다.



김형석. (2019). 백년을 살아보니. 서울: 알피스페이스.

빌링턴, 도티. (2012). 멋지게 나이 드는 법 46. 윤경미 옮김. 서울: 작은씨앗.

샤르마, 로빈. (2000). 내가 죽을 때 누가 울어줄까. 정영문 옮김. 서울: 신성미디어.

소노 아야코. (2019).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오경순 옮김. 서울: 리수.

쇼이치, 와타나베. (2012). 지적으로 나이 드는 법. 김욱 옮김. 고양: 위즈덤 하우스.

실즈, 데이비드. (2014).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파주: 문학동네.

채민기. (2024). 조선일보. '104세 철학자' 김형석 "지식 갈구하는 이는 늙지 않습니다'.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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