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여름은 풀과의 전쟁이다. 여기서 말하는 '풀'이란 잡초를 말한다. 잡초의 생명력 과 번식력 앞에서는 혀를 내두르고 손발을 들 수밖에 없다. 밭에 난 잡초를 말끔히 제거하고 밭의 자태를 보면 마치 집안 대청소를 한것마냥 개운하고 마음도 가볍다. 그러나 그런 마음도 며칠만에 심란해진다. 우기에 장마는 말할 것도 없고 소나기라도 한번 오면 황토빛 대지가 어느새 푸른 초원으로 뒤바뀌고 만다. 물만난 물고기가 아니라 물만난 잡초라고 해야 옳을 듯싶다. 농부가 밭에 파종을 하고 땀흘린만큼의 수확을 하기 위해서는 여름내내 예닐곱번은 잡초를 뽑고 또 뽑아야 한다. 잡초때문에 밭농사를 포기한다는 농부의 한숨섞인 말이 그저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잡초는 씨앗을 뿌리고 돌보는 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잡초의 근성으로 보면 이 세상의 대지를 다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그 기세는 대단하다. 기개세(氣蓋世), 즉 세상을 덮을만한 기운이라고 할만하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심지어 바윗돌에 약간의 틈새만 생겨도 그들의 차지가 되고 만다. 나훈아 노래 '잡초' 가사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이름 모를 잡초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대개 농촌에 산다고 하면 밭이며 논이 얼마간 있는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는데 필자에게는 "송곳하나 꽂을 자리가 없다." 대신 지인의 여유 땅에서 서너두렁을 빌려 재미삼아 대파며 오이 등을 심는다. 필자는 전업으로 농사를 짓지 않는 대신 마을 진입로를 차지한 잡초를 제거하는 것으로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 몫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내 스스로 마을을 위해 뭘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길옆의 잡초를 제거한지 4년째가 되었다. 나처럼 농사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에겐 딱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일찍 논밭으로 나가 늦은 밤에야 집으로 들어가는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면 필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내지는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솔직히 농부들도 진입로의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그 길을 지나고 있지만, 자기네 밭에 난 잡초를 제거하기도 바쁜 처지라는 현실을 필자는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필자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깎아도 금방 또 자랄 풀을 힘들여 깎냐며 일당은 받고 하냐는 등 농아닌 농을 할 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정해졌다. "마을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마을 진입로에 자동차가 달리면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풀밭으로 피해야 하는데 풀이 덮고 있으면, 금세 뱀이라도 나올까봐 피할 수가 없다. 우거진 풀을 깎아놓으면 자동차로부터 안전할 뿐더러 딱딱한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 풀밭의 푹신한 쿠션을 밟으며 걷는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또 우리마을을 찾는 외부인에게도 단정한 진입로는 좋은 이미지로 연결될게 뻔하다.
필자 역시 여름에 길옆의 풀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예닐곱은 깎아야 한다. 족히 150미터도 넘는 진입로에 우거진 잡초를 깎는데 낫을 들고 낫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 농촌에서도 웬만한 일을 할 때도 장비에 의존한다. 작업 환경에 맞는 장비를 구비했을 때 일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를 장비발이라고 한다. 필자가 삽질을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포크레인 기술자는 "이걸로 한번만 파면 되는데..."라고 농담할 정도로 장비에 의존한다. 필자는 예초기(또는 예취기)를 구입하여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예초기를 허리에 매는 것조차 힘들고 얼마 사용하고 나면 허리근육이 경직되어 금세 내려놓고 파스를 붙이고 목욕탕을 다니며 뜨거운 물에 담가야 했다.
뭐든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집뜰의 풀을 깎는데도 예초기를 돌리며 맹훈련을 했다. 1시간 정도 예초기를 잡고 작업을 한 뒤에는 손가락이 덜덜거리며 떨렸다. 마치 수전증 환자처럼 수저나 젖가락을 잡아도 덜덜 떨려 음식을 먹기 힘들지경이었다. 예초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요령이 생겼다. 예초기의 손잡이 부분을 반드시 손으로만 잡을 필요가 없고 작업환경에 따라서는 팔굽치로도 보조를 하며 손에 들어가는 힘을 줄일 수 있었다. 대개 초보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법이라고 하던가. 이제는 어깨와 손에 힘을 뺀채 예초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올해 들어 서리가 처음 내린 엇그제 금년 마지막 예초를 했다. 예초하기 딱 좋은 시기다. 서리를 맞은 잡초는 더이상 자라지 못하고 그 상태로 말라비틀어 진다. 예초로 생긴 잡풀을 빗자루질로 깨끗이 마무리하고 몇번이고 뒤돌아보았다. 마을길은 반짝반짝 윤이 난 것처럼 보였고 내 마음의 영토는 그만큼 넓어졌다. 올겨울 잡초에 빼앗겼다 되찾은 그 영토에 하얀 눈이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좋겠다. 예초작업을 반복하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사전에서는 잡초의 의미를 "아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풀"이라고 정의내린다. 인정사정 볼 것도 없이 길위의 잡초를 예초하는 내 마음 한구석에는 이 잡초 중에는 언제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귀하게 쓰이는 약초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개운치 않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