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와 카페사장 2

2. 한가한 시간을 '잘' 견뎌야 한다

by 케이

내가 하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꽤 좋다.

시야에 걸리는 건물 없이 길에 서 있는 나무들이 계절과 시간을 온전히 담아낸다.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는 이 풍경 때문에 '이곳'에서 카페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카페를 오픈했다는 걸 안 지인들이 오면 늘 하는 말이 있다.


- 여기 너무 좋다.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질리지 않겠어.

여기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책 읽으면 너무 좋겠다. 부러워


나의 대답은

- 응 너무 좋지. 손님은.

근데 나는 안돼. 주인이 여기 앉아서 커피 마시면서 책 읽으면 그 카페는 망한 거야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낭만적인 카페는 손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주인에게는 판타지에 가깝다.

주인이 앉아서 커피 마시며 책 읽는다는 건 손님이 없다는 거고

장사가 안된다는 거다.


처음엔 바쁜 게 힘든 줄 알았다. 물론 몸이 힘든 건 맞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가한 게 훨씬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손님이 없으면 가게 안을 서성이고,

가게 앞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텔레파시를 쏘기도 한다. 불안감이 한정 없이 커진다.


생각해 보니 방송작가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는 소속이 없다.

(물론 조건이 되면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들어갈 수 있으나 그 소속은 좀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자신이 하는 프로그램 제작팀에 소속된다고 하는 게 맞겠다.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방송국과 제작사를 많이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고

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달리하며 오래 일하는 경우도 있다.


프리랜서라는 직군은 자유롭다는 큰 장점도 있지만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다는 큰 단점도 있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지만, 쉬고 싶지 않을 때도 쉴 수 있다. 심지어 일을 하고 있어도 불안한 경우도 있다.

다음엔 어떤 프로그램을 하지? 일이 안 들어오면 어쩌지? 등등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선택해서 쉬는 경우보다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프로그램을 그만둬야 하거나, 프로그램이 일찍 막을 내리거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기는 경우에도 예상치 못한 공백 기간이 생길 수 있다.


스스로의 의지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 이 한가한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여행을 하는 등 평소 바빠서 미뤄뒀던 것들이나 쉴 때 할 수 있는 것들을 잘하고,

뉴스나 관심 분야도 평소 하던 대로 잘 챙겨야 또 다른 일, 프로그램이 들어올 때 잘할 수 있다.

프리랜서는 스스로 잘 돌보고, 기회가 오면 언제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바쁠 때보다 한가한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처음엔 지나가는 손님을 억지도 끌고 들어올 수도 없으니, 그저 창 밖만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하루에도 왔다 갔다 하는 불안한 마음을 백만 번쯤 다잡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있고, 손님이 쫙 빠지고 한가한 시간도 있다.

한가할 땐 조금 쉬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재고나 재료도 챙긴다.

그리고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도 카페고 손님은 있지만 한가한 시간이다.

카페를 하는 동안 이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잘 쓸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쁠 땐 일을 하면 된다. 몸 힘든 줄도 모르고 시간도 빨리 간다.

한가할 땐 그 시간을 잘 보내고 버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뭘 하든 오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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