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mother

그랜마덜?

by 김유미

노브와 슬라이더가 달려 있는 독립 키보드를 보통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라고 부른다. 버클리 음악 대학교에서는 손바닥만한 크기부터 방의 한 켠을 차지하는 정도의 크기까지, 다양한 신디사이저들을 구비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는 그랜드 피아노나 디지털 피아노만 연주했었기 때문에 그것이 신기했다.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도 모르겠어서 연주는 못하고 처음에는 호기심에 멀뚱히 쳐다만 봤던 기억이 난다.


신기한 점은 내가 그곳에서 학생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말인 즉슨, 매일 그곳에 머물며 신디사이저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나와 똑같이 매일 그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이 있었다. 서성이기만 하는 나와는 달리 그 애는 신디사이저에 헤드폰 잭을 꽂고 노브를 움직이며 그것을 연주하는 실력자였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기억은 스플릿 잭으로 두 대의 헤드폰을 연결하여 함께 연주하던 우리의 장면을 떠올린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쭈뼛거리며 먼저 다가갔나? 혹은 서성이는 나를 그가 불렀나? 어쨌든, 그 학생은 신디사이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자신을 'Manual Lover' (매뉴얼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매뉴얼을 읽기 시작하며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의 세계에 빠졌다고 했다. 나도 슬며시 박스에 들어있던 책자를 펼치자 예상치 못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Grandmother'.

알고보니 그가 연주하던 신디사이저는 이름이 있었다. 'Grandmother' (할머니)였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소심하던 때. 그 학생은 백인 남자애였다.


"빨리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천천히 말해줘."

"When you turn down the frequency knob, it's called 'Low Pass Filter (LPF)'."

(주파수 노브를 낮추면, '저주파 필터'라고 불러.)

"Frequency (주파수)가 뭐지? Low Pass Filter (저주파 필터)? 전혀 모르겠다."


신디사이저와 관련된 용어는 전부 생소했다. 집에 가서 단어장을 만들어서 외웠다. Grandmother의 상위 하드웨어인 Matriarch (대모大母)도 플레이하게 되면서 제작회사가 추가한 다른 사운드효과는 무엇인지 공부해보며 점차 기본지식을 넓혀나갔다. 전자음악을 전공하고 1년이 지난 뒤, 매우 크고 복잡하게 생긴 신디사이저도 만져보면서, 내 안의 세상이 확장되었다.


나는 그 인위적인 장치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푹 빠졌다. 그것은 전선을 타고 흐르는 주파수를 비틀고 때로는 파괴시키며 헤드폰으로 나와 내 고막을 울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평범한 날 아침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 노력과 결실이 만들어낸 신디사이저들에 대해 침 튀기며 설명하시던 교수님의 열정적인 표정. 전선을 수도 없이 추가하고, 뽑았다 꽂았다를 반복하며 각 기능에 대해 설명하던 강의.

image.png 여러 장치를 결합한 형태 신디사이저이다.

중앙에 보이는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의 전선을 'Input (입력)' 구멍에 연결하고 'Output (출력)'에 헤드폰을 연결하면, 소리가 나온다. 소리의 형태를 바꾸려면 전선을 추가하여 다양한 종류의 Input 구멍에 꽂으면 된다.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공부하는 과정은, 어떤 신호를 어디로 보내느냐, 즉 이 Input의 종류와 배선형태를 공부하는 것이다.


Grandmother을 처음 배우면서 매뉴얼도 읽어보고, 상상도 못했던 사운드의 세계도 알게되었을 때의 느낌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있다. 현재는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들을 매일매일 마주하는 경험은 못하지만 소프트웨어인 Serum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오랜만에 얘기 나온 김에,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Grandmother을 먼저 구매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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