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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11. 2019

생각들이 나를 지켜보던 공간

내가 처음 쓰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참 오랜만이었다. 강연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듣기 위해 주말 오후를 쓴 것이.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느긋한 마음으로 강연장에 도착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받아 들고 빈자리에 앉았다. 이날 강연은 제주맥주 마케터들이 모여 그들의 일 이야기를 들려주는 토크였고 나는 좋은 기회가 닿아 초대를 받게 되었다. 초대는 29CM에도 입점된 가구 브랜드 데스커에서 해주었다. 하루면 열 개가 넘는 브랜드와 기획전 카피를 작성하는 나로선 기억에 남는 브랜드와 금세 잊히는 브랜드가 있곤 하는데 데스커는 전자에 속한다. 그 이유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따라붙는다. 


만삭으로 배가 부른 상태에서 회사에 다녀야 했던 때 종일 앉아서 근무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부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길 반복했고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앉는 게 불편해 자리 양보에도 불구하고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이 회사에 한두 개쯤 있으면 좋겠다고. 이후 아이를 출산하고 회사에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작업을 하다가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발견했고 그게 바로 데스커의 모션데스크 스마트 컨트롤이었다. 

필요에 의해 알게 된 물건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 그렇게 알게 된 데스커란 브랜드는 작업할 때는 물론 틈틈이 신제품이 나왔는지를 체크하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 데스커는 최근까지 온라인으로만 주문할 수 있는 업체였다. 하지만 작년 말 아직까지 가구는 직접 보고 앉아 보고 사야 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깊게 인식해 신사동 한적한 골목에 쇼룸을 만들었다. 내가 강연을 들으러 간 날이 일요일이어서도 그랬겠지만 골목은 무척 한산하고 조용했다. 모처럼 날이 좋아서 아이와 함께 나와 나는 강연을 들으러 가고 남편과 아이는 그사이 한강으로 산책을 갔다. 

예상했던 것보다 공간은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1층 입구에 들어서자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너머로 큰 통창 앞에 데스커의 심플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1층은 얼른 둘러보고 2층 강연장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면 베러먼데이의 카페가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데 침이 고이는 맛있는 디저트와 샌드위치 때문에 저걸 먹고 볼까? 아주 잠시 내적 갈등을 했으나 이성을 찾고 자리에 앉았다. 카페의 맞은편 작은 공간이 그날의 토크장. 이미 예닐곱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후 몇 명이 더 도착해 족히 15명 이상은 모여 제주맥주의 독특하고 참신한 마케팅 이야기를 들었다. 강연은 트레바리와 데스커가 함께 준비한 것으로 나 이외의 대부분 사람들은 트레바리 회원이었다. 뜬금없이 데스커가 왜 트레바리와 콜라보를 했는지는 잠시 뒤에. 

제주맥주 마케팅 권진주 실장의 시원시원하고 열의에 찬 토크 1부가 끝나고 2부에서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오정현, 이진영 두 마케터가 합세해 시종 웃음을 연발하는 수다의 장이 펼쳐졌다. 내게 특이한 점은 맥주 회사다 보니 물이나 커피 대신 맥주를 마시며 토크를 진행했다는 것. 나에게도 맥주가 주어졌지만 운전을 하게 될지도 몰라 가방에 넣어뒀다가 집에 돌아가 남편과 나눠 마셨다. 얼마 전에 브런치에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함께 일하는 사람들 간의 호흡을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결과물을 신뢰할 수 있다. 난 제주맥주를 고민하고 함께 끌어가는 이들의 토크에서도 그것을 감지했다. 제주맥주가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함께 일하는 사람 간의 합에 있었구나.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서둘러 담당자를 찾아 쇼룸을 더 구경시켜달라고 했다. 처음에는 1층과 2층이 전부 인 줄만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3층으로 올라가자 마치 서재를 옮겨놓은 듯한 공간이 펼쳐졌는데 그곳에서 트레바리와 데스커가 콜라보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공간은 북카페로 2층에서 음료를 사서 이곳에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다. 데스커의 북카페 자체가 트레바리와 데스커의 콜라보 작품이었다. 여기에는 트레바리에서 추천한 책들만 모아놓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규모 모임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돼 있다. 글쓰기나 독서모임을 위한 공간을 찾는 중이라면 강력히 추천! 책을 사랑하는 나로선 아무래도 이 공간이 가장 탐났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책 한 권을 들고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공간을 소개해준 담당자는 나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 뭐가 또 있어요?”라고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내가 물으니 그곳이 바로 데스커의 가구가 전시된 공간이라고 했다. 건물 자체가 크지 않아 공간은 오붓했고 스타트업을 위한 가구를 만드는 브랜드답게 공간 자체가 스타트업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듣고 보니 실제로 데스커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와서 근무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내가 그렇게 갖고 싶었던 모션데스크를 실제로 영접했다. 버튼 하나로 부드럽게 높낮이가 조절됐다. 꼭 만삭의 임산부가 아니더라도 배불리 점심 먹고 들어가 바로 앉아서 일하기 싫을 때 이만한 책상이 없겠다 싶었다. 사장님한테 간곡히 부탁하고 싶을 정도! 데스커의 가구는 한마디로 심플이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공간의 제약이 많을 걸 감안해 작지만 알찬 가구를 만든다. 쓸데없이 부피를 자랑하는 가구와는 차원이 다른 실용성도 갖췄다. 

우리는 다시 1층으로 올라갔다. 강연 시작 전이라 촘촘히 둘러보지 못했던 터라 보지 않은 1층 안쪽을 더 살펴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신세계가 있었으니 바로 그 공간은 게임회사와 콜라보한 것이라고 했다. 게임 쪽 스타트업도 많아 이 공간의 데스크들은 모션데스크를 세팅해 놓았고 7, 8월 경에 다양한 취미 활동을 지원하는

전용 데스크가 출시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게임 회사를 통으로 옮겨 놓은 듯한 묘한 분위기가 신선했다. 입구 쪽에는 유튜버를 위해 직접 방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1인용 방송 시스템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헤드셋, 키보드, 웹캠 등 정말 구석구석 배려와 아이디어가 나를 노려보는 장소였다. 안 보고 갔더라면 정말 서운했을 뻔. 

처음에는 메인 거리와 떨어져 있는 게 다소 의아했지만 이건 그들의 의도였고 찬찬히 구경하고 나니 시끌벅적한 곳보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 데스커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제품, 공간, 네트워크를 통해 건강한 열정을 가진 스타터들을 돕고 함께 성장한다는 브랜드 철학 아래 점차 그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데스커를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토크 들으러 왔다가 공간에 더 반했던 하루. 

나는 하루 24시간 중 8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아 있다. 학창 시절부터 직장생활 20년을 합치면 그 횟수도 어마어마하다. 시대에 따라 가구의 유행도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터들을 위해 만들어진 가구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다. 디자인에 앞서 사용자의 생활과 건강 그리고 그들의 더 나은 미래를 먼저 생각하기에 유행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데스커를 응원한다. 어떤 공간에 다녀와서 사적으로 감상을 적어보긴 처음이다. 공간을 추억하며 적을 일이 별로 없었던 나로선 새로운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글은 손으로 쓰지만 사진은 발로 찍기에 이미지는 데스커에서 가져왔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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