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_연작소설
겨우 두 시간. 벌써 삼일 째. 민재는 자신이 지쳐있다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치지 않을 수가 있나. 삼일 째 두, 세 시간밖에 못 자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다. 민재가 맡고 있는 이번 일은 회사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일이다. 물론 수익적으로. 클라이언트가 엄청난 계약금을 걸었다.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해서 계약이 갱신되기라도 하면 회사로서 더한 경사는 없을 것이다. 물론 민재와는 상관없이. 어차피 같은 월급에 일이 가중될 뿐이다.
민재는 수면부족으로 멍해진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승강장에 곧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열차라니, 새삼스러운 단어다. 승강장에서 나오는 방송에서는 항상 전철이나 지하철을 열차라고 말한다. 열차(列車). 여러 개의 전차가 줄지어 연결되어 있는 탈 것이라는 말이다. 전철과 기차, 지하철을 모두 아우르는 말. 하지만 그 말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는 건 민재가 촌스러운 시대에 열차를 타며 청춘을 보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 그때가 좋았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민재는 하품을 했다.
8-3 승강장에 선 민재는 자꾸만 힘이 빠지는 몸을 추슬렀다. 위험한데. 가는 도중에 잠이라도 들면 제때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서 있는 것도 곤욕이다. 가는 내내 사람에게 끼어 이리저리 휩쓸려야 한다. 아니, 자리에 앉을 수나 있을까. 운에 맡길 뿐이다.
민재의 회사는 사당역에 있다. 역에서는 걸어서 10분 거리. sns와 유튜브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홍보, 마케팅으로 유명해진 회사였다. 민재는 이 회사의 창립 멤버였다. 군대에서 친해진 형과 함께 시작한 회사였는데 처음엔 그저 재미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번듯한 회사가 되었다. 감개무량이다. 하지만 그뿐. 지금은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때의 충족감이나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어느새 회사는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자금을 운용하는데 만족하고 있었다. 회사를 팔아버린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창립 멤버지만 경영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통해 그런 소문을 듣게 되었다. 황당해서 지금은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가진 형에게 물었다. 형은 아니, 이사님은 곤란한 얼굴로 말을 흐렸을 뿐이다. 민재는 더 묻지 않고 일에 집중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전철이 도착하자 스크린도어가 열리고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사람들에 휩쓸려 전철에 탔다.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탄다. 그때 빠른 환승을 하게 해주는 승강장 위치가 8-3이었다. 민재는 항상 이곳에서 전철을 탔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 옆 8-4에서 항상 그 여자가 탄다. 민재의 회사에서 2년을 일했고 결혼과 함께 퇴사한 민지 씨의 친구. 결혼식장에서 딱 한 번 봤던 그 여자.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민지 씨의 부케를 그 여자가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우연히 민지 씨와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였다.
“이거 받으면 3개월 안에 결혼해야 돼. 아니면 평생 못 한대. 알지?”
“무슨 결혼을 그렇게 해.”
“야, 너 미신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 있는 거야. 너 같은 애들은 이런 미신이라도 있어야 결혼을 하지. 대체 왜 연애도 결혼도 싫다는 거야?”
“너 때문에 싫다.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관심 좀 꺼줘.”
“이건 뭐 걱정을 해줘도 지랄이야. 오늘 같은 날엔 그냥 맞춰주면 안 되냐?”
“걱정을 참 지랄 맞게 해 주니까 그렇지. 부케는 받아줄게. 하지만 참견은 넣어 둬. 그리고......”
“아유, 그래 너 잘났다.”
민지 씨는 그렇게 대화를 끝냈지만 여자는 남은 뒷말을 조용히 이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양. 그 말을 민지 씨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 바로 뒤에 서있었던 민재는 들었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를 모르겠어.”
그 조심스러운 말에, 자신감은 없고 배려만 남은 말에 민재는 놀랐다. 아직도 저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이기적인 열망이 아니라 스스로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고민하는 예민함을 지닌 사람이. 민재는 꽤 오랫동안 여자의 말을 떠올렸다.
“민재야, 난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모르겠어.”
지금은 이사 님이라 부르는 그 형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처음 sns 홍보를 기획하고 시작했을 때는 없었던 고민이었다. 그저 우리가 찾아낸 혹은 우리를 찾아온 유익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혹은 재미있게 노출하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익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점점 바뀌었다. 콘텐츠 혹은 제품 자체보다 입금되는 금액으로. 그들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sns에서 소위 빵 터진 제품에 안정성 문제가 터졌을 때 이사님이 처음 그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자본력으로 그 안정성 문제를 유야무야 만들어 회사도 큰 타격을 입지 않게 되었을 때도 이사님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다. 형과 아니, 이사님과 대화를 나눈지도 오래되었다.
민재는 밀림의 빽빽한 수풀처럼 전철 안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 틈에서 최대한 어깨를 움츠리고 두 팔을 교차해 팔짱을 끼었다.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사람들에 밀려 8-3 승강장에서 탔지만 8-4 승강장 쪽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여자가 보였다. 오늘도 단정한 세미 정장 차림에 굽이 낮은 단화를 신고 있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 틈에서 연신 떠밀리면서 천장에 매달린 손잡이 하나를 붙들고 있다.
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찐 바지에 욱여넣은 살덩이들처럼 불편하게 끼어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 조용했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불쑥 아기 울음소리가 터졌다. 일순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젊은 여자가 6개월이나 되었을 싶은 아기를 아기띠로 맨 채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다. 아기가 울자 젊은 여자는 당황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움직이며 편한 공간을 만들어주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기 울음소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듣기에는 조금 치명적이었다. 안 그래도 잠이 모자란데 민재는 골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아기는 좀처럼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두 정거장쯤 지나자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거, 애 좀 달랩시다! 이 시간에 애 엄마가 왜 나와있어, 대체.”
민재는 당황했다. 아직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아니,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본 게 처음이었다. 민재는 다시 태어나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말. 아니, 웬만해서는 굳이 하지 않는 말. 젊은 여자는 곤란해서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그 말에 순식간에 표정이 변했다. 억울함과 분노가 그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달랠 수 있으면 달랬죠! 이 시간에 애 엄마는 전철도 못 타요?!”
“아니,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나이도 어린 게!”
“나이 어린데 뭐 보태줬어요?! 나이 많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뭐가 어째? 어미가 이러니까 애도 저러는 거야! 그 성질머리로 애나 잘 보겠냐고!”
“뭔데 참견이세요! 우리 애는 제가 알아서 잘 봐요!”
믿을 수 없는 말다툼이 이어졌다. 싸움을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끼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표정이었다. 몇몇은 이어폰을 끼거나 끼고 있는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민재도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낼 참이었다. 참, 별 일이 다 있네. 간혹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시비가 붙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경우는 신선했다. 그 와중에도 아기는 계속 울었다.
“아기야, 까꿍!”
이어폰을 꺼내던 민재의 손이 멈췄다. 또다시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 여자였다.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던 여자.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자와 마주 보고 있던 여자는 울고 있는 아기에게 환하게 웃으며 재롱을 부렸다. 까꿍, 까꿍, 하는 소리에 싸우던 두 사람도 조용해졌다. 아기는 계속 울었지만 그 이상의 소음은 사라졌다. 그리고 여자의 까꿍 소리도 멎었다. 젊은 여자는 다시 우는 아기에게 집중했고 더는 그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전철 안은 조용해졌다.
신도림 역에서 여자는 내렸다. 민재도 내렸다.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 하지만 민재는 갈아타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출구로 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내가 좋은 사람인지 모르겠어.”
“민재야, 난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 모르겠어.”
그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렸다.
민재는 그 날 사표를 냈다. 이사 님은 아니, 형은 민재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뭘 할 거냐고는 물었다.
“처음에 하려던 거, 그거 하려고.”
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재는 형과 악수를 나누고 회사를 나왔다. 그 후로는 또다시 정신없이 바빴다. 작은 스타트업 회사를 시작했고 사무실은 구로디지털단지에 얻었다. 스타트업 회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었고 무엇보다 신도림에서 갈아타야 갈 수 있었다. 한숨 돌릴 수 있을 때쯤 민지 씨에게 연락했다.
“오, 팀장 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요. 민지 씨도 잘 지내죠? 오랜만에 뜬금없지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제가 팀장 님 신세를 좀 졌어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뭐든, 이라고 했겠다. 민재는 웃었다. 그 여자한테 꼭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좋은 사람 소개 좀 시켜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