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_나만 창피한 거 아니죠
_엉뚱한 구원
어릴 때 밤이 되어 자려고 이불속에 누우면 문득 두려워졌다. 그대로 죽을까 봐. 잠이 들면 그대로 깨어나지 않을까 봐. 정말 너무너무 무서워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며 잠이 든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왜 그렇게 죽음이 무서웠을까, 아니 대체 뭘 안다고.
나는 어려서부터 자의식이 강했던 모양이다. 항상 나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꼈다. 어디를 가든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가 신경 쓰였고 궁금했다. 그래서 항상 껍데기 속에 꼭꼭 숨어 지냈다. 진심과는 다른 말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가 원하는 조숙하고 말 잘 듣는 딸이라는 껍데기. 선생님들이 원하는 조용하면서 솔선수범하는 학생이라는 껍데기. 친구들이 좋아하는 털털하고 의리 있는 친구라는 껍데기. 수도 없이 많은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지내다 밤이 되면 그 모든 껍데기를 그날 입은 옷가지처럼 한쪽에 개켜놓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우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데 죽는다니, 꺼이꺼이. 말도 안 돼, 꺼이꺼이.
나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끼기 때문에 그것이 사라질 때의 감각이 어떨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없다니!! 이 우주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돼!
뭐, 누군가 아끼는 사람이 떠나간 자리가 그리워 죽음에 대해 그리 슬퍼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아이였다면 좋았겠지만 어린 나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자 저 먼 본 적도 없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없는 세상을, 우주를. 언젠가 없어질 육체에 갇혀 있는 나의 의식이 불쌍했다. 만들어놓은 껍데기들이 아까웠다…, 는 건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이고, 당시에는 그냥 정말 슬펐다. 이불속에 묻혀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다 홀로 밤에 훌쩍거리는 것을 동생에게 들켰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은 세상 어른 같던 누나가 이불을 붙잡고 눈물과 코를 흘리며 우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후다닥 엄마를 불렀다.
지금은 꽤 소녀 같은 감성을 키우며 창가에서 난 이파리를 하나씩 닦는 김 여사지만, 그 당시에는 맞벌이로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건사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괄괄한 김 여사였다. 엄마는 꽉 붙들고 있는 내 이불을 확 걷어 젖혔다.
“어떤 놈이야!!”
“…??”
“…??”
엄마의 일갈에 나뿐 아니라 동생도 놀라고 말았다. 어떤 놈? 뭐가?
“어떤 놈이 울렸냐고! 아니, 왜 이러고 질질 짜고 있어! 그놈은 어디다 두고! 어떤 놈이야! 말해!”
뭐야, 우리 엄마지만 무서워.
나와 동생은 그런 의미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눈물이 쏙 들어간 채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 대꾸할 수도 없었다. 뭐라 그래. 죽음이라는 추상명사가 나를 괴롭힌다고? 잠자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게 억울하고 무서워서 잠도 못 자겠다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을 다물자. 엄마는 마치 내가 말 못 할 몹쓸 짓이라도 당한 거라 여겼는지 눈에 불길이 일었다. 앗, 뜨거워라.
결국 엄마의 닦달에 나와 동생은(동생은 대체 무슨 죄로? 본인도 밤새 나는 왜?라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밤새 시달렸고, 다음 날은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졸려 죽겠다고 칭얼거리는 남매를 엄한 눈으로 다스린 엄마는 단호했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 얼른 학교 가!”
놀라운 점은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더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거다. 아니, 간혹 생각은 났지만 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죽어도 학교에서 죽게 될 테니까 언제(학교에 있을 때), 어디에서(학교에서) 죽을지 알게 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최소한 집에서 잠을 잘 때 픽 죽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어린 나는 그런 생각에 정말 더는 울지 않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신기해서 아주 엉뚱한 방향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모양이다. 정말 말도 안 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