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_나만 창피한 거 아니죠
_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여름이 왔다. 게다가 휴가다. 아, 신난다.
J와 함께 바다에 가기로 했다. J는 해군 출신으로(해병대가 아니다, 해군이다) 자신을 자랑스럽게 수달이라 부른다. 해군이면 해달이지 왜 수달이냐고 물으면 해달은 보노보노 같잖아, 라는 같잖은 소리를 하는 녀석이지만 수영 실력은 인정. 이미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굳이 토를 달진 않았다.
자칭 수달인 남자 친구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물에 뜨는 ‘사람’ 일뿐이라 항상 바다에 놀러 가면 영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좀 색다른 걸 해보기로 했다.
스노클링. 입에 공기펌프를 물고 얕은 물속에서 경치를 구경하는 스포츠인데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덜컥 스노클링 마스크를 사버렸다. 어떻게든 튜브를 타고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치욕스러운(그게 왜 치욕스러운지 아리송한 사람들도 많겠으나, 행동의 자유를 빼앗긴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며 간혹 J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하는 그 상황을 단호하게 치욕스럽다, 하겠다) 상황은 면하고자 한 충동구매였다.
물안경과 입에 무는 기다란 공기펌프로 구성된 옛날의 스노클링 장비와는 확연히 다른 스노클링 마스크는 획기적이었다. 일단, 입이나 코로 물이 들어갈 걱정이 없었다. 수영을 할 수 있든 없든 간에 그 사실 하나에 만족하며 짐을 쌌다.
바다에 도착해서 작열하는 태양(진부한 표현이다)과 하얀 거품을 내며 파도를 내뱉는 푸른 바다(역시 진부해서 미안하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간 생활 때문에, 관계 때문에, 또는 지독한 더위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슬슬 물러가는 것 같았다. 모래사장 위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낼 타이밍인가, 하며 스노클링 마스크를 꺼냈다. 멋진 장비였지만 조금 부끄러웠다. 나와 같은 장비를 착용한 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J마저도 간소하고 익숙한 스노클링 장비만을 손에 들고 있었다. 게다가 수영도 못 하면서 대체 어떻게 스노클링을 하겠다는 건가. 하는 생각이 그제야 뒤통수를 때렸다. 순간 해파리처럼 바다 표면을 둥둥 떠다니는 나의 뒤통수를 상상했다. 뭐야, 튜브 타고 둥둥 떠다니는 거랑 뭐가 다른 거야. 조금 막막했지만 그뿐, 일단 바다로 뛰어들었다. 눈앞에 바다가 있는데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바다로 뛰어들고 멀뚱히 섰다. 스노클링 마스크라는 희귀하고 미래적인 느낌의 장비를 들고서.
일단 J가 마스크 쓰는 걸 도와줬다. 마스크를 쓰자 이건 뭐, 마치 다스베이더라도 된 듯 비장미가 철철 흘러넘친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을 보며 쿡쿡, 웃어대던 J의 옆구리를 쿡! 찔러주고 일단 바다에 몸을 뉘었다. 진짜 누웠다. 대자로. J의 손바닥이 나의 배를 받쳐주었다. 처음엔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맑게 비치는 바닷속을 보고 있으려니 그런 두려움이 스르르 사라졌다.
보이는 건 모래와 바위뿐인데 그 물속이 왜 그렇게 아름다운지…. 그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왜 그렇게 예쁜지… (평소 좋아하는 회 생각도 나지 않았다). 조금 감동하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배가 허전해졌다.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고 부력만으로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몸을 자각했다. 우와, 진짜, 뜨는구나. 인간은. 그 후로 마치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한 마리의 해파리 마냥 물 표면을 둥둥 훑고 다녔다. 물에 뜨긴 하지만 그뿐, 수영을 전혀 하지 못 하니 자력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다 퍽!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발길질에 당한 것이다. 어라, 그런데 내 발에도 뭐가 걸린다. 팔꿈치에도 걸리고.
스노클링을 하려고 모여든 사람이 많은 그 해변에는 나와 같은 사람 천지였다. 정말 놀라운 점은 많은 이들이 해파리처럼 물 표면에 납작하게 붙어 버둥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둥거리며 옆이나 앞사람을 차고, 때리고, 나도 맞고. 뭐지 이 상황. 나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벗으며 잠시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니, 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이니까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