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저 아가씨 아니에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직원일 뿐입니다
"아가씨 ~ 이것 좀 해도."
지방의 시장에 위치한 물리치료실에서 근무하다 보면 60대 이상의 환자분들이 여성 직원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병원뿐만 아니라 은행, 공항, 헤어숍, 식당, 카페 등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여러 기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성세대들의 성차별 문화, 한국인의 친근감을 유발하는 '정' 문화 등에 인해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리치료사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도 환자들이 치료사들에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의아했었다. 하지만 선배치료사들이 묵인하는 것을 신입이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회식자리에서 그런 호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말해봤자 뭐 하겠어요."
"그러려니 해요. 하도 들어서 아무렇지 않아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넘어간다는 의견이 많았고, 일부는 '기분 나쁠 때도 있다.' , 누군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도 있었다. 동료들의 생각을 듣고 나니 '모두 나처럼 아가씨라는 호칭이 불편한 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좋게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환자들에게 관련 내용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이후 십 년이 지나고 나니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는 종종 환자들에게 부드럽게 부탁드리곤 한다.
"어머님 ~ 우리 선생님들한테 '아가씨'보다는 '선생님~' 이렇게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앙~"
고맙게도 딸 뻘 밖에 안 되는 사람의 요청에도 대부분의 환자분들이 '아! 그렇지? 알겠습니다~' 하며 너그럽게 받아주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리는 만무하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물리치료 안 올 끼다!' 하는 분들도 분명 계신다. 그런 반응을 감수하면서 지금도 환자들에게 지속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
나는 줄곧 호칭에 신경 쓰는 편이었다. 병원에서 청소해 주시는 분께는 '여사님', 식당에 근무하는 종업원들께는 '사장님', 미용실에서는 '디자이너님', 애매한 경우에는 '선생님' 등의 호칭을 붙여 대화를 시작했다. 때로는 그런 호칭이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겠지만, 적정한 거리가 '존중'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아가씨', '삼촌'등 의 호칭이 상황에 따라 친근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빵집 사장님이었다면 어땠을까. 빵을 사러 오신 손님이 '아가씨'라고 부르신다면 되려 '어머나 제가 아가씨로 보이나요? 고마워라!' 하며 너스레를 떨었을 것이다. 손님이 살갑게 대해주신다는 건 자영업자로써는 매우 반가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아가씨', 누군가에게는 '사장님', 누군가에게는 '빵 전문가'이겠지만 어떤 식으로 불려도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가씨'라는 호칭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다. 결국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든 우리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환자분들에게 그렇게 부탁하는 이유는 호칭의 변화로 인식도 함께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남자가 할 일, 저 일은 여자가 할 일 등의 고정관념에 균열이 생기길 바란다. 어느 분야에서든 틀이 존재한다면 관련 분야의 성장을 막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로 남자, 여자가 아닌 그 '직(職)''업(業)'으로 존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