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두고 싶은 동네

가까이 있어서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by 윤덩

자취방 계약기간, 학교와 회사에 맞춰 떠돌이 생활을 하는 번거로운 삶이지만, 본가를 제외하고 3곳의 동네에 살아보며 인생에서 제법 중요한 데이터가 쌓였다. 바로 ‘나를 두고 싶은 동네’의 조건이다. 멀리 있어서 굳이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곳이 아닌, 걸어서 20분 내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영향력은 제법 크다. 나에게는 어떤 동네가 필요한지 몇 가지만 뽑아 소개해 본다.


첫 번째는 산책로. 지난번 살던 동네에는 집 근처에 중랑천이 있었다. 한강처럼 중랑천도 제법 길기에 구역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지만, 동네 중랑천은 깔끔한 산책로가 잘 닦여 있고, 한강처럼 멀리서 오는 사람보단 동네 주민이 위주였다. 조금만 더 멀었다면 귀찮음에 방문 빈도가 확 줄었을 테지만, 가까웠던 덕에 좋은 날씨를 핑계로, 때로는 무기력함을 떨쳐 내기 위해 자주 방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는 산책을 즐긴다는 점과 러닝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사는 동네엔 산책로는 없고, 트랙이 있는 운동장이 있는데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러닝에는 지루함을 느껴 뛰지 않고 있다. 이 동네에서 러닝을 처음 시작했다면 평생 러닝은 나에게 맞지 않는 운동이라 생각했을 거다. 지금은 대로변을 산책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프로 산책러인 나에겐 좋은 산책로는 필수다.


두 번째는 도서관. ‘책 읽기’가 아닌 ‘책 구입하기’를 취미로 평생을 살아온 나, 지난번 동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도서관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구매한 책과는 달리 대출기한에 맞춰야 하니 책 읽는 습관이 생겼고, 도서관 방문은 내 일상의 루틴이 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걸어서 3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버스 타고 10분 거리에 괜찮은 도서관이 여러 개 있다. 덕분에 이사 와서도 다독가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으로 살며 내가 도서관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동네, 지역의 도서관을 방문해 보겠다는 소소한 목표도 생겼다.


세 번째는 문화생활. 집순이인 내가 1시간이 넘는 거리도 주저 없이 다녀올 정도로 미술 전시 관람을 좋아한다. 지금 사는 동네엔 대형 예술 공간과 이사하기 전부터 종종 방문햿던 갤러리가 있다. 덕분에 큰 관심이 없던 공연과 작가의 전시회에도 모자만 눌러쓰고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내 관심사는 더욱 넓어져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재미를 쉽게 느끼고 있다.


마지막은 내 취향의 카페. 혼자 카페 가는 걸 좋아해서 카페 생활은 내 일상의 중요한 영역인데, 취향을 완벽히 충족하는 카페를 찾는 게 은근 쉽지 않다. 큰 통창이 있어 채광이 좋고, 동네 사람만 오고, 디저트가 맛있어야 한다는 제법 까다로운 조건이다. 우리 집 근처엔 모든 조건을 채운 카페는 없지만 동네 최애 카페는 있다. 꼬질꼬질한 차림으로 가서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카페가 내 주변에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 이사 갈 때도 이 조건들을 기준으로 집을 구할 거고, 또 새로운 기준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 내 일상의 반경에 있어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쇼핑몰이, 등산을 좋아하면 산이 될 수도 있다. 특별하진 않지만 이 작은 요소들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느꼈기에 다들 ‘나를 두고 싶은’ 동네를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길 추천한다.


*'나를 두고 싶은 동네'라는 표현은 조성익 작가님의 책 <건축가의 공간 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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