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책갈피

책갈피를 꽂아 다시 펼쳐보는 순간들

by 윤덩

사내 글쓰기 모임 깐부님에게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를 주제로 받고 어떤 행복을 꺼내볼까 고민해 보았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들도 있지만, 가끔씩 기억에서 꺼내서 되감기 해보는 행복들도 있다. 이 두 번째 종류의 행복 중, 잊고 있다가 최근 몇 년 전 기억이 나서 종종 떠올리는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수능을 2주 정도 앞둔 고3 시절, 청소시간에 할 일을 끝내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나의 1지망 대학교에서 합격 결과를 확인하라는 문자가 왔다. 예정된 일정보다 이른 공지에 옆에 있던 친구에게 스팸 문자 아닐까 이야기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까지 모여 핸드폰으로 결과를 조회하니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의 ‘우와!!!’하는 소리에 나의 합격 소식은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막상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상태로 우선 담임 선생님께 이 소식을 알리고 다시 교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당시 내 자리는 앞에서 3번째쯤의 가장 오른쪽 자리였는데, 뒤에서 분단별로 ‘축하~ 축하 ~ 축하~’ 화음을 쌓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하며 친구들이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싱숭생숭한 시기에, 반에서 가장 먼저 대학을 합격한 친구를 위해 진심으로 축하해 준 순수함이 지금 떠올려 보니 너무나도 소중하다. 수줍게 고맙다고 말하고 나서 이후의 야자시간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얼떨결에 수능을 재미로(?) 봐도 되어버린 상황에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폰도 만지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던 기억만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현관문을 여는데 현관 근처의 방 안에서 가족들이 ‘짠~’ 하고 나타나 꽃다발을 건넨 것이 기억난다.


여전히 실감이 잘 나지 않던 나는, 꽃다발 사진만 클라우드에 남긴 체 이 기억을 잊고 살아왔다. 그러다 몇 년 전 우연히 이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그땐 몰랐지만 이날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날이었구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고, 누군가를 축하하는 순수한 마음들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뒤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이후로도 나는 가끔씩 이 기억을 꺼내 보며 그때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뒤늦게 느껴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인생에 이런 행복의 책갈피가 꽂히고 가끔씩 그 페이지를 다시 펼쳐본다. 앞으로 많은 행복의 책갈피를 꽂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딱 맞게 담은 문장을 만났다.


"인생 뭐 있어. 살다 보면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나고 그 기억을 목걸이처럼 꿰어 가지고 있다가 가끔 들여다보고. 그 순간들의 힘으로 사는 거야.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많은 사람이 행복한 거야."

<인생의 해상도>, 유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