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천

내 하루에 한 숟가락의 죽음이 더 있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by 최유나

성탄 전날의 낮. 제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여름 이곳에서 보냈던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의 시간이 행복했던 탓일까. 시외버스 창 너머의 제천은 너무나 낯설었다. 별일이 없었다면 나는 내년 여름에나 영화제를 보러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었고,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빈다는 플래카드만 곳곳에 걸려 있었다.


택시기사에게 뉴스에 계속 등장하던 그 병원으로 가달라고 했다. 그는 나의 행선지를 듣고 아무런 말없이 차를 몰았다. 내가 왜 그곳에 가려고 하는지, 기사는 모든 것을 아는 듯했다.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는 방송국 차량이 몇 대 있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고인과 상주들의 이름이 나오는 모니터를 지켜봤다. 상주 명단에는 J의 이름도 있었다. 고인의 사진도 화면에 함께 비쳤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아직 젊었다.


빈소 입구 방명록에 내 이름과 조의금 전달을 부탁한 어른의 이름을 적고 있을 때, 등 뒤에서 J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나 선생님….’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J를 꼭 껴안았고, 그녀는 울었다.






한 사무실에서 책상을 마주 하고 있는 J와 나는 며칠 전까지도 연락을 했었다. 감기가 걸려 병원에 다녀왔다며, 그 이튿날 사무실에서 보자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 몇 시간 뒤, J는 제천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제천에 J의 친정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안타깝던 뉴스가 그의 이야기일 것이라고는 차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엄마를 잃은 서러움과 막막함을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오랜 투병 기간 동안 서서히 변해가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나를 언제 떠날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렇게도 억울하고 어이없게 엄마를 잃은 그녀의 깊은 절망을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뉴스에서 봤던 대로 빈소 앞에는 대통령의 이름과 국무총리의 이름이 적힌 조화들이 놓여있었고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짙은 적막감과 당혹감이 조문객들 사이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모두 입을 굳게 닫고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빈소 옆 식당에 앉아 음료수 한 잔 만을 마시고 장례식장에서 서둘러 나왔다. 평상시 거의 입지 않는 검은색 옷에, 검은색 우산을 쓰고 겨울비를 맞으며 걷는 제천의 거리는 너무나 쓸쓸했다. 자꾸만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은 너무나도 맞닿아있어 두려우면서도 신비롭다. 두 차원이 뒤섞인 물결은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시퍼렇게 몰아친다. 삶과 죽음의 소용돌이. 내가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오늘이 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하루에 한 숟가락의 죽음이 더 있었다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 좋게도 한 숟가락의 삶이 더 있었기에 지금 살아있다. 아무 일 없이, 아무렇지 않게 오늘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며칠 전 그녀는 사무실에서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대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아니, 나는 시샘을 했다. 나에게 없는 것이 그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옹졸했던 마음 때문에 그녀에게 불운이 닥친 것만 같아서, 그때의 생각을 도려내고 싶어졌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물론 알고 있지만, 정말 내 자신이 못 견디도록 부끄러웠다.






터미널에 다다를 때 즈음, 청승맞던 비는 하얀 눈으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마치 내일이 ‘성탄’이라는 것을 일러주듯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오셨다는 그분의 탄생일을 앞두고, 그를 부정하고 싶어졌다. 무엇을 위한 성탄인지, 누구를 위한 성탄인지 내 아둔한 머리로는 알 수가 없었다.



내년이 되고, 후년이 돼도 크리스마스는 다시 제천을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내게 안겨 흐느끼던 J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때마다 행복한 일상의 한복판에서 세상을 떠나버린 엄마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늦가을, 단풍이 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내가 엄마를 기억해야 하듯이.





에세이문학 18년 여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