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80대인 남성 어르신이었다. 단정한 매무새에 따뜻한 말투로 나를 맞이하셨지만, 깡마른 몸에 뿌연 눈동자는 한 눈에도 건강이 나빠 보였다. 도시락을 방문 틈으로 넣어드리면서 어르신의 방안을 보게 되었다. 물건들이 한데 뒤섞인 작은 방은 어지러웠다.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어르신에 대한 실례이기에 나는 미소를 보이며 식사 맛있게 하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고시원을 나왔다. 고시원 건물 1층에는 개고기 가게가 있었고, 요리용으로 깔끔하게 손질된 개들은 나란히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주검이 된 개들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그런 얼굴을 한 채 시장 한복판에 한동안 서 있었다. 어르신 방 특유의 냄새와 개고기 누린내가 코끝에서 지워지지 않던 그 여름날. 하필 그날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방울이 뚝뚝 떨어질 만큼 지독하게 더웠다.
보호자로서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을 경험한 후, 나는 전공을 바꿔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복지학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안 되는 학문이었다. 학교 교과과정 중 예비 사회복지사로서의 업무 실습은 중요한 의무였고, 나는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며 실습을 시작했다.
노인복지관은 다양한 이의 삶을 목도해야 하는 최전선이었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은 어르신들이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밥이 필요한 분에게는 도시락을, 취미생활을 원하는 어르신에게는 그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한 달의 실습시간 동안 여러 부서 업무를 경험하면서 사회복지사들을 보조했다. 그날 도시락을 들고 어르신의 댁에 갔던 것도 실습교육 중 하나였다.
반찬과 밥이 가득 든 도시락은 무게가 꽤 나갔다. 하지만 행정업무와 달리, 어르신들을 직접 뵐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설레었다. 작은 수레에 도시락 여남은 개를 조심스럽게 얹고 배달을 나서는 내게, 담당 사회복지사는 방문해야 할 어르신들 댁을 지도에 표시해서 건네주었다.
어르신들은 다양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이 ‘일반적인 공간’도 있었지만, 고시원에서 지내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도로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지하에 사는 어르신들도 계셨는데, 고시원에서 지내는 분들에 비하면 안락해 보였다. 복지관을 막 출발했을 때만 해도, 내가 사회복지 현장의 한가운데에서 활동하는 것 같아 묘하게 흥분됐다. 그러나 고시원의 작은 방문을 두드리며 어르신들을 만날수록 이상하게 우울해져만 갔다.
마지막에 찾아뵈어야 하는 어르신은 복지관에서 제법 먼 곳에 살고 계셨다. 어르신 댁을 가기 위해서는 왕복 6차선의 큰 도로를 지나야 했고 재래시장도 가로질러야 했다. 시장 한복판에 집이 있다는 것이 약간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도에 의지한 채 길을 걸었다.
지도에 표시된 곳 근처에 도착했지만 사람이 거주할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개고기 가게들만 줄지어 있었는데, 가게 앞에는 다리를 쳐들고 배를 보이며 누워있는 개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들이 ‘고기’라는 생각보다 ‘생명체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질 때쯤 가게들 사이에 좁은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계단 안쪽에는 고시원이라 적힌 작은 안내판이 있었다.
고시원 입구에서 어르신의 방을 안내받은 나는, 문을 두드리며 도시락을 갖고 왔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나온 이는 병색이 완연한 고령노인이었다. 손녀뻘인 나에게 노인은 정중하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 점잖은 어르신이 왜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시게 됐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그것은 그분께 드러내서는 안 될 호기심이었다.
배달업무는 끝났고 수레에는 아무것도 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배달을 시작할 때보다 수레는 왠지 더 무거웠다. 먼지 냄새와 누린내, 퀴퀴한 땀냄새로 뒤섞인 서글픔이 내 온몸을 짓눌렀다. 빈 수레를 끌고 터덜터덜 건너는 한여름 6차선 도로 위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이상하게 외로웠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대체적으로 장남의 사업비를 지원해주다가 상황이 나빠진 경우라는 것이 담당 사회복지사의 귀띔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고시원에서 지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쓰러지듯 침대 위에 눕는 순간, 내가 갖고 있는 원죄 아닌 원죄가 뇌리를 스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어머니의 명의로 되어 있던 우리 집을 본인의 이름이 아닌 내 명의로 바꾸자고 하셨다. 본인 명의의 다른 아파트가 이미 있고 내가 외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아버지의 동의하에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나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아버지가 감사했다. 그러나 집의 명의자가 내가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명의와 상관없이 우리 집은 그냥 ‘우리 집’ 일뿐이었다.
하지만 난 인정해야만 했다.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라고 생각했던 내 삶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가진 자이자 선택받은 자였다. 나의 행복을 그 어르신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했음에도 자꾸만 답답하고 괴로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나에게 허락된 행복과 안락함이 그들에게는 왜 허락되지 못했던 것일까. 이 행운을 누릴 자격이 나에게 과연 있는 것일까.
내 명의로 된 방바닥의 온기를 당연하게 느끼며 올 겨울 편안히 잘 지냈다. 그리고 아주 가끔 그 어르신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셨을지 궁금해했다. 그분의 깊고 긴 삶을 마음 다해 이해하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젊고, 거저 누리는 행복이 너무나 크다.
<수필미학> 2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