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학교 캠퍼스는 봄빛으로 가득했다. 세상의 모든 꽃이 그곳에 모여있는 듯, 캠퍼스 그 자체가 봄이었다. 매년 꽃이 피면 지도교수님은 자신의 학생들을 학교로 부르셨다. 그러면 우리는 개강맞이 식사를 함께했고 꽃 아래에서 사진도 찍었다. 함께 어울려 하루를 보낼 때면, 고단한 대학원 생활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봄날 캠퍼스의 낭만은 재작년에서 멈춰있다. 당혹감과 묘한 불안감으로 맞이했던 작년의 코로나 상황은, 어느덧 1년이 지나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인간들의 어수선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연은 올해도 봄으로 물들어 있었다.
수업이나 연구실 회의 같은 학교의 모든 일정은 작년 3월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요즘 나의 등교는, 침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도 이젠 익숙해졌고,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등교시간을 길에서 보내지 않아도 되고, 외출을 위한 몸단장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노트북에서 ZOOM이라 불리는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면, 작은 사각형 안에 학생들과 교수님의 얼굴이 보인다. 우리는 학교 교실에서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교수님의 수업자료도 공유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공허함은 늘 남아있다.
나는 이번 학기부터 학부 수업을 단독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교수자로서 지도교수님과 함께 수업에 참여한 경험은 몇 번 있지만, 혼자 수업을 담당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데 온라인으로 진행해야 한다니. 수업에 대한 부담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열릴 온라인 주소를 수강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줬는지, 그들은 어떤 것을 알고 싶어 내 수업을 신청했는지, 3월 개강을 앞둔 나는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다.
다행히 수업은 무난하게 시작되었다. 열 명 남짓한 학생수는 서로 의견을 나누기 적합한 인원수였다.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이 계기가 되어 뒤늦게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한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학생들에게 좋은 학문적 자극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이 20대의 청춘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고 나는 열심히 수업을 했다. 다행히도 수강생들의 과제를 통해 그들의 성장을 느꼈으며, 그것은 기쁨이자 고마움이었다.
그러나 수업이 몇 주 이어질수록 묘한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게 카메라를 끄는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설사 학생들이 자신의 얼굴을 공개한다 해도, 컴퓨터는 오프라인 수업에서 느꼈던 그들의 따뜻한 눈빛과 몸짓까지 나에게 전달해주지는 못했다. 또한 소음을 막기 위해 학생들은 각자의 마이크를 꺼둔 상태여서, 나의 농담에도 그들의 얼굴만 웃고 있을 뿐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업 후에 교실을 나오는 동안에도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할 수 있던 오프라인 수업과 달리, 온라인 수업은 수업이 끝나면 모두가 있었던 인터넷 창을 바로 닫았다.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캠퍼스 공기와 봄 풍경에 설레진 나는, 학교 안을 산책하며 꽃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캠퍼스 한켠의 작은 언덕길 앞에서 멈춰섰고, 코로나 이전의 시간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곳은 학부 수업을 위해 교수님과 내가 수업 전후로 오가던 길이었다. 목요일 오후면 교수님과 나는 교수님의 연구실을 나와 학부생 수업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강의실을 향할 때면 학생들을 만나기 직전의 설렘이 가슴을 가득 채웠고, 수업 후에는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이 저녁 빛에 젖어드는 캠퍼스처럼 내 마음을 물들었다. 일 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길 위에 소복이 쌓인 벚꽃잎처럼 가슴에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잃었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공간에 대한 공통의 기억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가 더욱 즐거웠던 것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많은 관객이 함께한 덕분이었고, 개개인의 가냘픈 목소리는 광장에서 여럿이 모였을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모일 수도 없고 모여서도 안 되는 지금, 몹시도 그리운 것은 스무 명 남짓의 동학(同學)들이 모여 함께 밥을 먹고 사진을 찍어줬던 재작년의 봄, 그때의 캠퍼스이다. 작곡가 정재형은 봄바람에 나부끼는 깃털에서 봄이 왔음을 느꼈고, 모두가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이 답답한 봄을 견뎌내길 꿈꾸었다고 했다. 지난 수업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면 학교 학생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자고. 반가운 사람들과 꽃빛 가득한 캠퍼스에서 어울리는 것으로 나의 봄은 곁에 왔던 것이다.
추억은 공간에 스며든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나의 모든 추억은 노트북 메모리에 갇힌 듯하다. line이 on이 되면 세계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건 지금의 상황에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line이 off가 되는 순간, 함께 하던 사람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방에 갇혀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운 공간도,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공간도 자꾸만 없어져, 모두가 모래처럼 뿔뿔이 흩어질 것만 같은 이 두려움은 어찌하면 좋을까.
부디 내년 봄에는 하늘거리는 벚꽃잎 아래에서 마스크 없이 모두가 함께할 수 있길, 성당 미사 중에는 마음껏 성가를 부르고, 나의 허튼소리에 수강생들이 깔깔 웃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길. 늘 그러했던 것의 소중함을 이제야 느끼는 지금, 늘 그랬던 것이 당연히 그러한 것으로 되돌아오길 간절히 꿈꾼다.
21년 여름호 <에세이문학>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