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는 열 명 남짓의 학생들이 앉아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그것은 내 수업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인 듯했다. 이전에도 대학교 강의를 맡은 적은 있었다. 지도교수님과 같이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형태이긴 했지만 혼자 한 학기 강의를 담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을 직접 마주하며 단독 수업을 진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교수님과 함께 수업을 했을 때 교수님은 ‘최유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매 수업을 정리하는 코멘트를 늘 나에게 맡기셨다. 대학원생인 나로선 수업 중 동학(同學)들과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동안의 청자(聽者)들은 내 이야기를 적당히 흘려듣는 듯하거나 평가의 기준을 날카롭게 찾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교수자’로서 참여한 수업에서는 달랐다. 내가 입을 떼자마자 수십 명의 눈동자는 일제히 나를 향했고, 그들은 나에 대한 깊은 동의와 신뢰의 눈빛을 보이며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누군가가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 어린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참 고마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표정에 겁이 났다. 내가 과연 그들 앞에서, 그들이 보내는 신뢰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됐기 때문이다.
교수님과 함께 한 수업에서는 교수자에게 보내는 학생들의 신뢰를 교수님과 함께 감당하면 됐지만, 나 혼자 진행하는 수업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들뿐 아니라 내가 내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20대 때는 그것이 당연히 내 미래가 되리라는 생각을 겁도 없이 했다. 그러나 삶이란 예정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일방적인 바람을 ‘꿈’이라는 단어로 정해놓고, 그것이 당연히 가능할 것이라 믿는 것은 신기루 같은 호사였다. 내 삶은 절대 호사스럽지 못했고, ‘학문’이나 ‘강의’ 같은 것들은 더 이상 나에게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현재의 내가 버틸 수 있게 하는 유일하고 절실한 방법이었다.
긴 길을 돌아 나는 다시 학문 앞에 섰다. 아무것도 모른 채 겁도 없이 이 길을 꿈꾸었던 때를 돌이켜보면 소중한 것을 잃었고, 힘에 부치는 시간을 보냈지만 이 세상에는 모두에게 적절한 때가 있다는 사실을 대신 깨달았다.
베란다의 마가렛 꽃은 초봄이 되면 흰색의 수수한 꽃잎을 펼치고, 분홍색 수국과 노란 장미는 자신만의 색깔로 여름 냄새가 햇빛에 감돌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나 여름이 무르익어 다른 꽃들이 하나씩 꽃봉오리를 터트리는 동안에도 꽃치자만큼은 초록색 통통한 봉오리 그 상태이다. 달콤한 그 향기가 그리워 어떻게 하면 꽃치자를 빨리 피게 할 수 있을까, 겉꽃잎을 살짝 제쳐보면 안 될까, 골똘히 고민을 하지만 방법은 없다. 꽃치자의 마음에 드는 햇빛과 바람이 어서 꽃봉오리에 닿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야 꽃치자는 비로소 꽃을 피운다.
앞에 놓인 길을 내 발걸음이 정확하게 디디고 있는지, 나에게 보내는 여러 신뢰의 눈빛을 내가 오롯이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은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하지만 꽃치자에게 필요한 건 ‘꽃치자에게 적합한 때’이듯 지금의 내 생활은 바로 지금 나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나에게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지나 가을로 가는 길목에는 코스모스가 피어날 것이다. 그건 코스모스에게 ‘코스모스의 때’가 왔기 때문이다. 꽃들은 자신의 때가 오면 자신의 아름다움을 의심치 않고 꽃망울을 피워낸다. 나에게도 지금의 나와 어울리는 때가 왔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매 순간 그때의 나에게 적합한 때가 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고 싶다. 그리하여 그때마다 활짝 피어나고 싶다. 마치 자신의 계절에 눈부시게 피어나는 꽃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