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과 레이스

리본과 레이스를 좋아하는 40대, 박사과정생

by 최유나

등교 준비를 하다가 분홍 리본 머리핀을 앞에 두고 문득 망설였다. 분홍색 앙고라실로 만들어져 털이 보송보송한 머리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마흔 살, 게다가 박사과정생으로서의 첫 등굣날인데 이걸 머리에 달고 학교에 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핀을 꽂든, 싫은 소리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내 나이와 교내에서의 역할을 생각하면 왠지 분홍색 리본핀은 멀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이를 어쩐다. 나는 난감해하며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양말이나 손수건에도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거나 레이스 달린 것이 좋고, 옷에도 레이스 장식이 있거나 앙증맞은 자수가 놓인 것이 좋다. 여름에는 얇은 망사 천으로 된 리본핀을 머리에 꽂고, 겨울이면 벨벳으로 된 리본핀을 머리에 꽂는다. 모자도 좋아해서 베레모도 즐겨 쓰고 다니는데, 내가 봐도 곧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실 내 취향이 예전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대까지 나는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며 살았다. 유독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던 엄마에 비하면, 내 차림이나 소지품들은 정말 수수무난했다. 화장도 대학교 졸업 후에나 시작했고, 옷에도 관심이 없었다. 머리는 항상 짧은 단발이었고 뛰어다니기 편한 운동화와 면바지면 충분했다.


그러다 서른 즈음에 떠난 일본 유학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내가 살던 곳은 도쿄 시부야에서 멀지 않은 ‘시모키타자와(下北沢)’라는 동네였는데, 그곳에는 도쿄에서도 유독 앙증맞고 귀여운 옷과 소품을 파는 가게가 많았다. 양말가게에는 리본과 레이스가 발목 주변에 붙은 양말이 진열되어 있었고, 코바늘로 뜬 레이스가 장식된 치마와 블라우스를 파는 가게도 제법 있었다. 또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페도라와 베레모를 무신경하게 쓰고 다녔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도 모자를 좋아해서 몇 개 사 두었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튀는 듯하여 자주 쓰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나 시모키타자와 거리에서는 전혀 걱정할 바가 아니었다.


좁은 자취방에 앉아 타국어로 적힌 책과 씨름을 하다 보면 저녁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서울보다 빨리 해가 지는 도쿄의 늦은 오후가 되면, 나는 늘 외로움과 답답함을 느꼈다. 대여섯 걸음이면 현관에서 베란다까지 갈 수 있었던 자취방은, 직전까지 살던 기숙사보다는 그래도 넓은 편이었다. 방 귀퉁이에 앉은뱅이책상을 펴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아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현듯 이곳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방안 공기가 어둑어둑해지면 고개를 들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욱신거리는 눈과 어깨를 주무르며 시모키타자와 상점가로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는 예쁜 것들이 참 많았다. 옷, 액세서리, 하다못해 커튼이나 실내용 슬리퍼에도 당연한 듯 레이스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던 일본어 실력이었지만 전공책 앞에서는 그렇지 못했고, 한국에서 썼던 논문을 일본어로 고치는 작업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두려웠다. 검푸른 불안감으로 가득한 머릿속은, 레이스와 리본이 붙은 소품을 구경하는 동안 신기하게도 가셨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것, 그리고 내가 필요한 물건을 그저 둘러보거나 한두 개 사고 돌아오면 타국의 좁은 자취방이지만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일본 생활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앙증맞은 것들을 좋아했다. 그 예쁜 것들을 보거나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데,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새 40대가 됐고 박사과정생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해진 것 하나 없지만, 왠지 리본과 레이스를 달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저 많은 머리핀들은? 그리고 옷들은? 아니, 다 떠나서 그것들이 그저 좋은 ‘나’라는 인간은?


분홍색 리본 머리핀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핀을 머리에 달았다. 그리고 레이스가 달린 연한 녹색 양말을 신고 집을 나섰다. 특별할 것 없는 평상시의 차림이었다. 나이와 역할이 바뀌었다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수업이 마무리될 즈음,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개강 첫날의 수업 소감을 나누도록 권하셨고, 이윽고 내 차례가 됐다. 나는 아침에 머리핀 앞에서 고민했던 내용을 말하며, 그냥 나답게 이번 학기와 40대를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교수님은 우리의 수업이 ‘노인복지론’이라는 것을 언급하시며 지금의 취향을 그대로 지키면서 40대, 그리고 8・90대를 맞이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어제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이며, ‘내일의 나’도 당연히 나 자신이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과 영속성에 굳이 경계를 나누고 나 자신을 재정의한 후 행동하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일 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나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되도록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을 발견하고는, 밑줄을 긋고 느낌표를 크게 그려놨다. 그저 지금의 나를 의식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얼마 전, 대학원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언니 이야기를 할 때는 ‘리본 선생님’이라고 말하면 학교의 모두가 안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배를 잡고 웃었다. 그리고 ‘리본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혈질 선생님’,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말보다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최근 들어 유독 머리 앞부분에 흰 머리카락이 왕창 등장하고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흰 머리카락은 뽑거나 염색하지 않고 그저 놔두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교수님의 말씀처럼 반백의 머리에 리본 핀을 꽂고 레이스 달린 양말을 신은 모습으로 지내고 싶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켜켜이 쌓아온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나의 정체성을 오롯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에세이문학> 20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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