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 밤, 하얗게 나부끼던

그들의 제의 자락은 마치 봄날의 하얀 목련꽃 같았다

by 최유나

광화문 광장의 텐트들. 나는 그동안 버스를 타고 그 앞을 무심히 지나다녔다. 아직 차가웠을 4월 봄바다에 자신의 살점 같은 가족을 묻어버린 사람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가슴 한 편이 저릿하긴 했지만, 나는 거기까지였다. 광역버스 안의 푹신한 좌석에 앉아있는 나와, 길바닥 차가운 곳에 자리 잡은 그들과의 거리. 나는 그 거리만큼 그들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친한 신부님이 연락을 주셨다.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미사를 집전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미사였지만, 공교롭게 미사 당일은 촛불집회 열기가 한창이어서 매스컴에서도 시국미사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래서인지 신부님은 조금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서울 밤하늘 아래의 미사도 궁금했고, 한 번 정도는 ‘그들의 텐트’ 곁에서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서둘러 월요일 저녁의 도심으로 향했다.



미사 제대는 이순신 동상의 바로 아래에 마련되어 있었고,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사제들이 우리를 마주하고 섰다. 겨울바람에 날리는 그들의 제의 자락은 마치 봄날의 하얀 목련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함께 하기 위해 모여 있었고 바로 곁에는 그것도 있었다. 내가 버스 창 너머로만 봤던 텐트. 그것은 서울 하늘 아래 정말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 도쿄에서 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다. 좋은 일본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분에 나의 유학생활은 그다지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친구로 대해줬지 외국인으로 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한 곳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 시나가와 역 근처에 있던 외국인 출입국 관리소였다. 외국인인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일본에 재입국할 때도 일본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다. 출입국 관리소는 일본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허가를 받기 위해 외국인들이 가는 곳이었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외국인 사이에서 서류를 접수하고, 내 순서를 기다렸다. 일본 정부의 관리를 받는 외부인이라는 정체성이 확인되던 곳. 그래서 나는 출입국 관리소에 가는 것을 참 싫어했다.



하지만 그곳이 꺼려졌던 더 큰 이유는 그곳에서는 내 속에 숨어있던 인종주의자의 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사무소에는 초라한 옷차림에 삶의 힘겨움이 얼굴에 가득한 중국인과 동남아 사람들이 많았다. 대기실 곳곳 소란하게 울리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그곳은 흡사 그들의 고향과 다를 바 없었다. 낯선 억양을 귓가에 두고 그들과 나란히 앉아 내 서류의 처리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서글픔을 느꼈다. 일본 정부에게 나와 제3 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출입국 관리소의 일본인 직원들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외국인이고 이방인일 뿐이었다.



출입국사무소에 다녀오던 날이면 꼭 마음앓이를 했다. 외부자인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했다는 것도 그러했지만, 제3 국의 노동자들과 내가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정말 실망스러웠던 것은 외모와 인종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속상해하는 나 자신이었다. 다른 이들의 삶과 문화를 공부하러 일본에 온 내가 이럴 줄이야. 늪에 푹푹 빠지는 듯한 서글픈 마음은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일본어 책을 읽는 것으로 달랬다. 참 아이러니했다. 한자와 히라가나가 가득한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면, 일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울 밤하늘 아래에서의 미사가 끝난 후, 나는 그들의 텐트를 서울 한복판에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에서 느꼈던 외인으로서의 서글픔이 나를 휘감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느껴진 감정이라 내 몸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분명 광화문 이곳은 나의 땅인데, 왜 이방인의 쓸쓸함을 느꼈던 것인가.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밤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생각했다. 아마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으리라. 이곳이 너와 나의 나라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사실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내 나라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면, 더 이상은 갈 곳이 없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고통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시간은 흘러 봄은 다시 왔는데, 내 마음은 겨울바람 세차게 불던 광화문 그 광장에 아직 머물러 있다. 그 사이에 우리에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까마득하다. 무엇보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생채기가 너무나 깊어 사무치게 쓸쓸한 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겨울을 지내야만 꽃이 피어나듯, 혹독한 추위를 지내온 모두의 마음에 머지않아 꽃 한 송이 소담스레 피어날 것을 나는 믿는다. 우리는 힘들었던 그 길을 이만큼이나 뚜벅뚜벅 걸어왔기 때문이다. 까만 겨울 하늘 아래 하얗게 나부끼던 제의들. 그 빛깔을 닮은 꽃이 환하게 피어나는 날, 나는 광화문 광장 텐트로 가서 조용히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2017년 에세이문학 여름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