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지진 한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by 최유나

아직까지 모모코 선생은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평소대로라면 수신확인은 물론 답장이 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지난 3월 일본의 지진 뉴스를 보고 선생의 안부가 염려되어 메일을 보냈는데, 그 메일을 여태까지 확인도 안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메일을 보낼 때만 해도 ‘모모코 선생은 도쿄에 살고 있으니까, 쓰나미가 일어난 지역보다는 그래도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모모코 선생으로부터 그 어떤 연락이 없자 막연했던 나의 걱정은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 내 불안을 증폭시키는 듯,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광포한 쓰나미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모모코 선생을 만난 것은 일본 유학 준비를 위해 일어를 배우던 학원에서였다. 고급반을 지도하고 있던 그는, 일본인 특유의 상냥함을 지니고 있는 밝은 성격의 여성이었다. 고급반의 수강생들은 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은근히 주눅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대화에 끼는 것은 고사하고,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쫓아가기에도 버거웠다. 내가 의기소침해져 있는 것을 알아차린 모모코 선생은 각별한 관심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몇 달 동안 선생의 지도를 받았고, 지난가을 그는 도쿄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우리는 편지와 메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우정을 다져왔다. 그런데 그런 모모코 선생의 소식이 없는 것이다. 도쿄에도 5도의 지진이 있었다는 뉴스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러던 며칠 뒤, 기다리던 모모코 선생으로부터의 메일이 왔다. 나는 반가움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메일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의 안부를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시작된 그의 글은, 내가 미처 생각할 수도 없었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지진이 났던 바로 그날, 피해가 극심했던 후쿠시마 현을 여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지역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피난소에서 머물면서 내 메일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쓰나미 경보음이 울려서 고지대로 대피를 했다는 것과, 자신은 현재 무사하며 한국에서 구조대원들을 보내온다는 뉴스를 듣고 기뻤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 있었다.



일본의 지진 소식 이후,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그곳의 절박한 상황을 계속 지켜보았다. 바다는 이미 우리가 알던 평화로운 바다가 아니었다. 누런 바닷물은 삽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해버렸다. 무참히 떠내려가는 집, 그리고 쓰나미의 아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아나는 사람들. 그 장면들은 정말 끔찍했다.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일어났던 재난에 대해 마음은 아파했지만, 구체적인 실감은 하지 못했다. 이번에 일어난 일본 지진도 마찬가지였다. 지진으로 인해 내 일본 유학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내가 머물 곳은 다행히 쓰나미 피해를 입은 동북부가 아닌 도쿄였다. 게다가 내가 아는 일본인들 중에도 동북부에 사는 사람은 없었다. 큰 지진이 났다 해도, 내 지인들은 자신의 거주지에 안전하게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모코 선생의 메일을 읽는 동안 사람의 일에는 늘 예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의 절박한 메일을 읽고 나니 쓰나미가 내 마음을 휩쓴 것처럼 가슴이 싸해졌다. 그제야 지진으로 인해 죽어간 사람들의 고통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문득 나가이 다카시의 수필「묵주알」이 떠올랐다. 작가는 상냥하고 현명했던 자신의 아내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작품 말미에 이르러 전쟁 중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인해 아내를 잃었다고 말한다. 원폭 투하 후 모든 것이 타버린 집터에서 그는 아내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묵주와 양동이, 그리고 까맣게 타버린 아내의 골반뼈였다. 아내의 흔적을 거두어 양동이에 담고 유골을 묻으러 가는 길, 무심한 저녁노을은 변함없이 타고 있었고 그의 발아래는 마을 사람들의 뼈 조각들이 뒹굴고 있었다. 처절한 풍경이었다. 나가이 다카시의 글에서 내가 찾은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그 자리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도쿄의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모모코 선생의 메일을 다시 받았다. 나는 곧 모모코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격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지만, 분명 그였다. 이렇게 큰 지진을 겪고도 용케 살아남아 안부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마워했다.



지진이 난 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쓰나미 피해 영상을 볼 때마다 아직도 내 마음은 힘들다.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집과 자동차 안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누군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모모코 선생이 소중하듯,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날 받았던 모모코 선생의 메일. 그 너머로 쓰나미 속으로 휩쓸려간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이 자꾸만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