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줌마가 좋다

요코하마에 사는 유미코 아줌마

by 최유나

유미코 아주머니의 편지를 다시 읽고 있다. 벌써 여러 번 읽은 내용이지만 읽을 때마다 달필로 흘려 쓴 아주머니의 글씨에서 활달한 성격과 푸근한 정을 느낀다. 내가 유미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일본에서의 유학이 결정된 해의 여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일본의 학교와 기숙사를 둘러보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비행기 날개에 감기는 구름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유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여러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가 내 손을 갑자기 꼭 쥐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귀가 아플 때 하는 버릇이었다. 어머니는 비행기만 타면 기압차로 귀를 아파했다. 일본은 비행시간이 짧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김포공항에 가까워지면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출수록 어머니는 더 괴로운 듯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내 등 너머로 낯선 손 하나가 불쑥 넘어왔다. 그 손에는 사탕 몇 알이 들려져 있었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뒷자리에 앉은 일본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향해 사탕을 내밀고 있었다. 그는 기압 차이로 귀가 아플 때는 사탕을 먹으면 나아진다고 일본말로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그 아주머니의 말대로 사탕을 녹여먹고 안정을 취하는 동안 비행기는 곧 김포공항에 닿았다.



짐을 챙기면서 나는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내 또래의 딸과 함께 한국이 좋아서 자주 한국으로 여행을 온다고 하였고, 나는 그에게 가을학기부터 도쿄에서 공부하게 되어 학교 주위를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대뜸 반말로,


“난 도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요코하마란 곳에 살고 있어. 혹시 급하게 어른이 필요할 때 연락해. 그럼 내가 너 있는 곳으로 가서 도와줄게.”


라고 말하며 아주머니는 메모지를 꺼내 급히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그걸 내 손에 쥐여 주고는 입국장을 향해 총총히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나는 무언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나에게 호의를 베푼 아주머니가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보통 일본인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가 어떻게 자신의 연락처를 선뜻 건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 후 보름이 지난날, 나는 고민 끝에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메모를 건넬 때 느꼈던 그녀의 진심 어린 표정과 말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것은 유미코 아주머니가 일본인이기 이전에 국적을 초월한 한 사람의 아줌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줌마를 좋아한다. 아줌마들은 주책스럽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흔히 ‘넓은 오지랖’으로 대변되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런 아줌마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인지 내 지인들 중에는 나와 같은 또래보다 중년의 아줌마들이 더 많다. 내가 일본에서 일본 주부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싶은 것도 역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유미코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비행기에서 사탕을 주셔서 고마웠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내 이름과 나이, 그리고 내가 일본에서 공부하게 될 학교와 기숙사의 이름도 적었다. 그리고 내가 일본에서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일본 주부들을 연구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유미코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처럼 마음이 훈훈했다.



그렇게 유미코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띄워놓고 기억이 어렴풋해질 어느 날, 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바로 유미코 아주머니였다. 일본의 문자가 그렇게 멋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녀의 필체를 통해 처음 알았다. 달필로 활달하게 흘려 쓴 그녀의 편지는, 그날 비행기에서 느닷없이 자신의 주소를 건네어 당황하지는 않았는지 염려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자신의 딸도 영국에서 오랫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어려울 때마다 현지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 고마움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와 함께 일본 방송사에서 조사한 한국 드라마의 인기순위 목록까지 자세히 적어 보내줬다. 바로 내 연구주제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도쿄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수업도 들어야 하고 생활도 꾸려가야 하는데 나는 아직 모든 게 미숙하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곳에도 아줌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도 길을 몰라 식품점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더니 하던 일을 멈추고 약도를 상세하게 그려 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길을 잘 찾았고, 그 약도는 지금 내 책상 앞에 잘 붙어있다. 식품점 아줌마의 자상한 마음이 약도에 배어있는 것 같아,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나는 차마 그것을 버리지 못했다. 유미코 아줌마가 비행기에서 급히 적어주던 주소나, 식품점 아줌마가 그려주던 약도는 내겐 그냥 메모가 아니다. 이 세상 딸들에게 보내는 간곡한 애정과 염려가 담긴 ‘아줌마의 사랑’인 것이다.



아줌마들은 금세 서로 친해진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자식들 이야기, 남편 이야기로 서로의 간격을 좁힌다. 길가 좌판을 벌인 할머니 곁에 앉아 마늘도 함께 까고 파도 다듬는 사람들이 아줌마이다. 그러나 사회에는 아줌마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이 주책없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감정 공유를 좋아하고,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아줌마들의 인간애이다.



내가 이곳 지리에 익숙해지면 유미코 아주머니를 만나러 요코하마에 가보려 한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지조사도 할 수 있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도 피어오를 것 같다. 아줌마 복이 많은 나는 참 행운아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