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에는 기품이 있습니다

일본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by 최유나

한국어 수업 시간에 케이코 씨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산기슭’이란 말이 무슨 뜻이죠?”



‘산비탈이 끝나는 비스듬한 아랫부분’이라는 그 뜻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당황스러웠다. 산기슭의 일본어는 ‘ふもと’(후모토)이지만, 나는 한국어로 그 뜻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칠판에 산을 그린 뒤 비스듬한 아랫부분을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그러자 케이코 씨는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코 씨는 한국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일본인이다. 이 열정적인 수강생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때, 나는 늘 설렌다. 그는 일본 유명대학의 미술사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인데, 한국의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일본에 유학을 오기 전부터 나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우리나라 말을 외국인에게 알리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족이란 근대국가의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란 말이 있다. 민족국가는 역사적 산물이 아닌, 근대 자본주의의 발명품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우리나라를 떠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느꼈던 감정은 달랐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모국에 대한 애정만큼은 결코 ‘상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아 귀국했을 때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인 ‘김포’라는 한글 간판에 뛰었던 내 가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한국어 첫 수업 시간에는 수강생들이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강사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강생들의 어색했던 어휘 선택은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그들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하게 되었다. 나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작문 숙제를 냈는데,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일상과 다양한 추억들을 단정한 한글로 적어 제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수강생 중 하나가 한국의 시인 윤동주가 자신의 모교인 릿교대학교를 다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무척 반가웠다. 이 일본 청년이 윤동주를 알고 있다니. 나는 그날 수강생들에게 윤동주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삶을 마친 그의 생애와 대표작「서시」를 가르쳤다. 모국어로 썼기 때문에 일제 치하에서 발표하지 못했던 그의 시를 나는 일본인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그 당시에는 윤동주의 시를 왜 발표할 수 없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말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도쿄의 기숙사 방에서 일제 침략기에 탄압받은 조선어에 대한 자료들을 읽고 있으려니,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임에도 묘한 분노가 치밀었다. 1930년대 ‘조선어학회’와 ‘조선어학 연구회’의 한글 대토론회에 대한 자료, 그리고 일반 독자들로부터 한글 어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던 동아일보의 ‘한글 질의란’, 그 외에도 한글 운동의 의의와 훈민정음의 중요성을 역설한 글들을 읽어가는 동안, 지금까지 내가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던 우리 국어의 수난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한글학자들과 문인들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모국어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언어를 바로 세워야만 비로소 나라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절박한 믿음은, 오늘을 사는 나의 마음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있어 국어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과거이자, 당당히 맞고 싶은 미래였다.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모국어’는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노력과 목숨을 담보로 지금까지 지켜져 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의 한글을 공식적인 언어로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7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때는 한자가 공식적인 우리글이었으며, 일제 침략기에는 일본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케이코 씨가 “한국어에는 기품이 있습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기품’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는 그에게 다음 시간에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서정성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멀지 않은 시간에 「진달래꽃」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그 시를 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즘 한국에는 ‘멘붕’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신문과 뉴스에까지 버젓하게 등장하는 이 신조어의 뜻을 나는 처음에 알 수가 없었다. 그 후 이 말이 ‘멘털붕괴’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 말의 의미처럼 나는 정말 충격을 받았다. 결 고운 언어로 시를 빚었던 윤동주의 한국어와 이 시대의 ‘멘붕’ 이란 단어의 괴리감에 나는 마음이 상해있다. 한국어의 기품을 사랑하는 케이코 씨가 나에게 ‘멘붕’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온다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