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지?

모리 아주머니 댁의 불빛이 보이면 나는 마음이 놓였다

by 최유나

‘자유롭게 가져가세요.’ (ご自由に取ってください。)


벚꽃 무늬의 고운 기모노를 입은 인형들이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짐이 늘까 봐 늘 신경 써야 하는 유학생인지라 주인이 가져가라는 예쁜 인형들을 보고도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하거나,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해야 할 때도 처리가 곤란할 것 같아서 처음에는 인형들을 그냥 지나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귀여운 웃음을 짓는 인형을 포기하기에는 왠지 힘들었다.


내가 인형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고 있을 때, 예순쯤 되어 보이는 일본인 아주머니가 나타나더니,

“얘들은 정말 귀한 인형이야. 하카타 인형이거든.”


아주머니는 은근슬쩍 내게 말을 걸었다. 밖으로 인형을 내어놓은 주인이었다. 그 댁의 문패에는 ‘모리(森)’라는 성이 적혀있었다.


“저는 유학생이라 하카타 인형에 대해서 잘 몰라요. 하카타가 뭔가요?”


내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하카타(博多)’라고 적힌 메모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하카타란, 일본 규슈지방에 있는 도시이며, 하카타 인형이란 그곳의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일본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처음과 다르게 나는 그 인형들이 갖고 싶어졌다. 인형 두 개가 같은 모양이라서, 나는 인형 하나만 가져가겠다고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이 인형들은 자매 인형이야. 서로 헤어지게 되면 얘들이 많이 슬퍼할 거야. 그러니 네가 두 아이를 함께 가지고 가면 좋겠어. 그러면 이 아이들도 행복해할 거야.”


아주머니는 정말 진지한 표정이었다. 일본인들은 인형이라도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내가 인형을 모두 가져가겠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인형들이 깨지지 않도록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면서 그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얘들아, 좋은 주인 만나서 잘 됐구나. 가서 행복하게 잘 지내렴.”


아주머니의 말에는 나에 대한 신뢰감이 녹아 있었다. ‘인형 새 주인 찾기’에 내가 선발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바로 그때 또 하나의 인형이 눈에 띄었다. 그 인형은 섬세한 기모노를 입은 아름다운 인형이었다.


“저 인형도 제가 가져갈 수 있나요?”


내 말을 들은 주인아주머니는 기모노를 입은 인형을 들더니, 인형에 얽힌 깊은 애정을 보였다. 시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며, 인형과 함께 했던 세월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머니의 애틋한 표정을 보면서, 인형과 함께 했던 가족들의 시간을 생각했다. 왠지 이 인형은 누군가가 계속 지켜줘야 할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오래된 인형을 모두 다 가지고 있기에는 집이 점점 좁아져서 어쩔 수 없이 새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아주머니의 남편께서도 집 밖으로 나오더니,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듣고 있었다. 그런 부부의 모습에서, 인형과 함께했던 애틋한 추억이 느껴졌다. 유학생 처지라 가능하면 짐을 늘이지 않아야겠다던 나의 처음 생각은 벌써 잊어버렸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이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있다가, 한국에 돌아갈 때도 데리고 갈게요. 걱정 마세요.”


그날 나는 세 인형을 모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인형들이 내 기숙사 방을 조금은 따뜻하게 데워줄 것만 같았다.


이 날 이후로 모리 아주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유나 상! 잘 지내고 있지?”라고 반갑게 부르며 안부를 물으신다. 따뜻한 눈빛에는 자신의 나라에 온 타국의 젊은이가 혹여나 고생하거나 상처받진 않을지 염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에게 일본의 이웃이 생기다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직 익숙지 못한 도쿄 생활이지만 나는 모리 아주머니가 있어서 안심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골목길 끝으로 모리 아주머니 댁이 보일 때면 기숙사도 머지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리 아주머니 댁의 따뜻한 불빛과 모리 가족들의 다정한 인사는 내가 이곳에서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약속을 건네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