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무용수의 얇은 무대복 아래로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거 참, 내 자리가 무대와 너무 가깝나 보다. 속옷을 입지 않은 그녀의 가슴선이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다니. 차라리 저 뒷자리에 앉았더라면 이렇게 민망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무용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몸짓으로 풀어내는 감정보다 그녀의 ‘몸’에만 자꾸 눈이 간다. 같은 여자인 내게 그녀의 몸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럼에도 예술로서의 몸짓은 보이지 않고 내 시선은 자꾸만 발레리나의 가슴에 꽂힐 뿐이다. 내가 이토록 실망스러운 인간이었던가. 동행한 친구는 어떤가 싶어 옆 자리의 친구 얼굴을 슬쩍 훔쳐봤다. 친구는 평상시 다양한 공연을 감상한다고 하더니만, 역시 나와는 달리 무용수의 예술적 감정을 읽고 있는 듯했다.
평소 나는 내게 예술적 감수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감정을 표현하는 실기에는 특출한 재능이 없어도 예술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만큼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런 내가 ‘예술’을 보지 못하고 발레리나의 ‘몸’만을 보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었다.
공연시간 내내 이런 무례한 태도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최면을 걸기로 했다. 이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무용수의 몸짓을 보면서 그녀가 몸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 혼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로 한 것이다.
‘순수한’ 눈으로 무용을 감상하려고 노력한 ‘최면’ 덕분인지 차츰 무용수들의 감정에 몰입되어 갔다. 나와 동행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 공연은 저명한 무용 평론가의 1주기를 추모하는 작품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무용수의 몸짓에서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그리움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동안 공연에 몰입하고 있노라니 무용수의 적나라한 실루엣에 당황하기만 했던 처음과는 달리, 인간 몸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리듬감 있는 어깨와 팔, 손끝의 움직임. 꿈틀거리는 근육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용에 관심이 없었던 내게 육체 역시 인간의 감정을 담는 훌륭한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그러나 참으로 경이로운 것은, 공연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자 그동안 나의 내부에서 눈 감고 있었던 수많은 겹눈들이 일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한 순간 나의 시야는 촉수 달린 야광충처럼 무대 구석구석까지 헤집기 시작했다. 꺼져있던 샹들리에 불빛이 한꺼번에 켜지듯 나는 정신의 눈부심을 경험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무대 위의 발레리노가 턴을 하는 순간, 그의 땀방울이 힘 있게 뿜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땀이 아닌 황홀한 다이아몬드 파편이었다. 그리고 짝을 이루어 춤을 추던 발레리나의 우아한 손끝에는 투명한 장미꽃잎들이 피어나 무대 위에 무수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몸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흔히 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인간의 육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미술사 수업시간에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품들을 공부하긴 했지만 팔이나 목이 댕강 잘려나간, 허여멀건한 대리석 조각들은 이러한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 뿐이었다. 하긴 수업시간에 감상했던 것은 실물로서의 조각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찍은 사진자료일 뿐이었다. 조각품의 3차원적 양감을 2차원의 평면으로 감상했으니 지금 돌이켜보아도 당시의 내 생각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서 움직이는 저 몸들은 3차원의 양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 시간에 봤던 슬라이드 쇼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저 몸들은 꼼짝 않던 조각과는 달리 빛나는 생명을 뽐내며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그동안 나는 내 몸을 귀찮게 여겼다. 할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잠이 올 때는 몸을 재워줘야 했고, 배가 고프면 먹여줘야 했다. 어리광만 부리는 몸이란 녀석은 도통 내 정신의 훼방꾼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 몸에 신물이 날 즈음이 되자, 나는 오직 정신을 키우고 보살피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애초부터 육체 따위는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용수들의 몸짓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했다. 내가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몸과 정신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몸이 없다면 내가 인간이겠는가, 귀신이지.
돌이켜보면 내 정신은 몸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귀를 통해서였고, 우리집 강아지 털의 보들보들한 촉감을 느끼는 것도 피부를 통해서였다. 겨울 아침의 차고 푸른 공기도 결국 내 몸을 통해서였던 것이다. 몸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들 보다, 몸이 존재했기에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인 내가 몸을 하찮게 여겼다니. 정신만 있으면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만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몸은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는데 말이다.
공연이 마무리되어 갈 때 즈음, 마지막 무대에 등장한 다른 여성 무용수도 첫 무대의 그녀처럼 맨살에 얇은 무대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내 눈에 더 이상 그녀의 가슴 실루엣은 보이지 않았다. 민망하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이미 인간 몸의 아름다움과 육체의 에너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손가락 근처만 맴돌았던 내 시선이 달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