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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름지기 Aug 26. 2022

물기 어린 마음

불현듯 눈물이 흐를 때

모든 생명력이 절정에 다른 뜨겁고 강렬한 아름다운 계절.

그러나 내 몸은 이 작열하는 여름 태양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늘 흐느적 흐느적댄다. 

내가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어하는 여름에 처음 맞는 육아가 더해진 고난의 시절. 


슬슬 후덥지근한 공기가 불어오던 6월 중순부터 8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까지

종교는 없지만 정말 온갖 종류의 신을 다 찾게 되는 두 달 반이었다.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이렇게 생생하게 실감 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 어지러웠고 종종 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다래끼, 피부염, 속 쓰림, 배탈, 현기증, 관절통 모든 종류의 염증과 통증을 

아주 야금야금 매일매일 느끼며 하루를 보냈다.

큰 병이 아니라도 사람이 이렇게 잔잔하게 고통스러울 수 있구나 하며 깨진 항아리 같은 몸을

새벽마다 매일 이어 붙이며 일어나 젖을 먹였다. 


그러다 엊그제 아기를 재우고 창문을 열었을 때 불어오는 서늘한 밤바람엔

너무 기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드디어 지나갔구나.

이 뜨거운 여름, 그리고 여름 육아의 첫날들이.


가을이 오면 모든 생체 리듬이 제 자리를 찾을 것만 같은 (그리고 기분도)

막연하게 낙관적인 희망에 부풀어있는 요즘이다. 


사실 이 여름이 정말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여름에 유독 지치는 체질을 타고난 것도

그 여름에 처음으로 육아를 해보게 됐다는 사실도 아니란 걸 안다.


2.61kg로 작게 태어난 우리 아기가 300일이 될 때까지 여전히 근육이 많이 붙지 않았다는 것.

다른 아기들은 기고 앉고 설 시기에도 아직 하루 종일 엎드린 채

그것도 한쪽 다리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경직돼 있다는 것. 

매일 다니는 사경 치료는 여전히 종결되지 않고 아직도 타이트한 목 근육을 늘릴 때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한다는 것.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카시트에 앉힐 때마다 유아 차를 태울 때마다 기울어져 있는 아기의 목을 보는 것. 


이 여름이 힘들었던 이유는 많기도 하다. 


'좋아질 거야', '전보다 많이 좋아졌어'라는 말로 아무리 부부간에 위로를 건네도

문득 흔들리는 상대방의 마음과 고됨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내가 이유식을 한 끼에서 두 끼로, 두 끼에서 세 끼로 만드는 날이 늘어날수록

혼자 매일 아이를 안고 짐가방을 메고 물리치료를 다니는 남편의 수고가 고맙고 안쓰럽지만

요리에 서툰 엄마가 자식 삼시 세 끼에 간식까지 해먹이겠답시고 나서 

삼복더위에 불 앞에서 등허리가 축축해질 때까지 한 시간씩 땀을 흘리고 나면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은커녕 뾰족하게 굴 때가 더 많다.


그렇게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한 엄마는

가끔 아이를 일찍 출산하거나 아픈 아이를 둔 다른 엄마의 SNS를 어쩌다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펑- 눈물이 북받쳐 흐른다. 


나도 모르는 새 줄줄줄 흐르는 눈물을 정신 차리고 닦다 보면, 


아, 내 마음이 이렇게 축 젖은 행주처럼 

늘 눈물로 젖어있었구나. 

미안함과 눈물로 점철돼있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축축하고 무거운 마음을 아기가 알아챌 새라 꽁꽁 숨기고 방긋방긋 하루 종일 웃느라 

때로는 그렇게 마음이 깊고 어두운 외로움 속으로 파고들었구나.

내 마음도 있는 그대로 쉴 곳이 필요할 테니.


작디작은 몸으로 곤히 잠들어있는 아기를 볼 때마다 드는

이 근원적인 죄책감은 언제쯤 여름 햇볕에 바싹 말린 이불처럼 쨍하게 마르게 될까.


물기는커녕 한 점 얼룩도 보이지 않게 바싹 말라서

아이에게 뽀송뽀송 밝고 맑고 상쾌한 미소를 내면에서부터 지어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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