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리의 방 2

마리의 조금은 어두운 이야기

by moonbow

2


버스에 올랐다. 무거운 가방이 어깨를 짓누른다. 지금 내 가방 속엔 노트 한 권, 도서관에 반납할 책 한 권, 발표 준비 자료(에이포 용지 한 뭉치), 피부를 커버해주고 화장을 보정할 콤팩트, 립글로스, 티슈, 혹시 모를 생리대, 흐린 하늘을 보고 넣은 3단 우산. 부피도 크고 무게도 크지만 하이힐을 신으니 백팩을 맬 수 없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올라 카드를 찍고 손잡이를 잡고는 창문을 응시한다. 발목이 오늘이 지나가기를, 내일 아침이면 세상이 달라져 있기를, 내일 아침이면 하늘에서 내려온 어느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고 눈을 뜨기를 바랐다.


학교의 분위기는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바뀐 학년 탓에 달라진 것이리라. 갈 곳을 정한 4학년 생들은 원래 자신의 자리는 그 곳이었다는 듯 사라졌다. 도서관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는 고시생, 학교의 뒷문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보이는 토익 전단지, 컴퓨터 자격증 전단지, 앞으로 당신들의 일이 될 것이라며 관심을 가져달라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자보. 그 아래 무심히 머리를 조아리는 비둘기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을 다 평가해 너의 인생이 고급 인생인지 중급 인생인지 저급 인생이 될 건지 결정할거라는 그 수능을 친지 4년. 그 4년 동안은 뭐가 어떻게든 돌아가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버텨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아온 것 같지 않은 선배들도 시무룩한 얼굴 또는 갑자기 전투력이 상승한 얼굴로 도서관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나 둘 학교를 떠나가고 있었다.


그 흐린 날 같은 4학년, 학교에서 누군가를 마주치면 불안한 시선을 둘 곳부터 찾곤 했던 순간들. 도서관 800번 대의 한국 소설 칸에서 나와 같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혹시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어슬렁거렸다. 어슬렁거리고 피곤하게 몸을 움직여도 탐탁치 않아 보이는 나일론 동아줄 조차 나를 잡아 올리지 않았다.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연애편지를 억지로 써 내려가며 의미 없는 탈락의 숫자들을 더 상승시키고 있었다. 4학년의 그 나날들은 시멘트 바닥에 피부를 쓸린 듯 쓰라리기만 했다. 학자금 상환의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갈팡질팡 알 수 없는 시간들은 그렇게 강물처럼 흐르고 결국엔 반 지하 방에서 나올 수 없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하나하나 감각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감각의 상실은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미 밥에 간장을 둘러 비벼먹고 있었던 나는 세상으로 나갈 전의를 상실 한 후였다. 아니 내가 찾고 싶은 세상을 찾을 용기가 없어 일종의 절망상태로, 그 절망상태는 일상적인 우울로, 그 우울은 감각의 상실로, 그 감각의 상실은 존재의 가벼움으로, 그 존재의 가벼움은 또 다시 자살할 수도 없는 무거움으로 뒤집히고 뒤집힌다. 자, 내가 자살을 한다고 해보자, 작은 뉴스 거리 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반 지하 방에서 8개월 정도, 아니 몇 개월 정도 월세를 못 내 썩은 채로 발견 되면 20대 여성 무직 신변 비관 자살 후 8개월 만에 발견 이라는 단신 사회면을 장식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주 조그맣게. 하지만 그 죽음은 너무나 흔한 죽음. 우리 사회의 단신 사회 지면 만큼만을 설명해 주는 죽음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니다, 아직은 흔한, 그리고 쉬운 자살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전기 밥솥에서 밥을 꺼낸다. 한 쪽 면이 말라 붙어 있다. 개의치 않고 숟가락으로 밥을 푸고 간장을 적당히 두른다. 참기름을 조금 붓는다. 깨도 조금 넣는다. 그것이 하루의 식사이다. 양을 채우기 위해, 다른 반찬은 없으니 평소보다 더 많은 밥을 담는다. 그리고 컴퓨터에 앉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드라마를 켠다. 더 이상 나는 현실을 살고 있지 않다. 드라마 속 음악과 사람들의 생을 살고 있다. 굳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처럼 힘을 들여 살아가고 싶지 않다. 굳이 내 피부를 느껴가며 내 육신을 써가며 절망하고 사랑하고 싶지 않다. 이미 나는 내 인생을 자기소개서들로 소진한 상태다. 나는 이제 설명되지 않는 사람으로 그저 그런 이력서, 폐기된 이력서 뒤로 사라져 간 존재이다. 그 마비의 순간에도 한 편의 드라마가 끝나고 다음 편으로 이어지는 단 2초의 시간. 모니터가 잠시 검다. 그 모니터에 비친 내 모습이 이 진실된 나의 모습이다. 2초의 암 막이 모니터에 드리울 때 그 모니터에는 표정이 없는 나의 얼굴이 있다. 그리고 사라지고 드라마가 이어진다.


나는 꺼져 내려 가고 있었다. 자다 일어나면 이 방이 과연 반 지하일까 생각했다. 완전 지하는 아닌 창문의 아랫부분만 땅 속에 묻혀있는 반 지하. 하지만 결코 몸의 아랫부분을 지상으로 완전히 끌어 낼 수 는 없는 반 만 잠긴 공간. 몸을 누이면 지하에 누워 지상을 올려다 보는 공간. 쉽게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계단 몇 개를 올라가면 전혀 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이 공간은 하루 하루의 시간을 땅 속으로 묻어버리고 먹어가고 있었다. 그 즈음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노래되고 있다는 것 하나만이 위안이 되었다. 그렇지만 장기하는 S대 출신에 노래할 힘이 있는 젊은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무거운 내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에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갠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쉬기가 쉽지를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


싸구려 커피, 눅눅한 비닐장판,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 구부러진 칫솔, 치석, 미지근한 콜라, 그 속의 담배 꽁초. 이 같은 단어들이 담긴 노래가 나를 또 나의 내면 상태를 노래해준다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이 노래가 나에게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서 부르고 유통되고 또 소비되고 공감이 되고 이슈가 되었다는 것. 그 것이 오로지 아스팔트처럼 굳어가는 나의 내면을 조금은 위로해 주고 있었다. 아니, 위로라고 하기엔 비겁하단 생각이 들었다.


"뭐하고 있었냐?"


문을 잡아 삼킬 듯이 두드린 J 의 첫 마디다.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허한 시선을 모니터로 옮긴다. 인터넷 창 위로 TV창이 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의 창문의 방범 창 사이로 회색 콘크리트 담이 보인다.


"또 TV냐?"

"……."

"밥 줘!"


말 없이 나는 부엌으로 간다. 혼자 먹을 때는 손도 대지 않은 프라이 팬을 꺼낸다. 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넣고 볶는다. 밥을 넣고 조미료를 조금 넣는다. 계란은 없다. 상을 차려오는 나를 J가 쳐다본다.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기분이 안 좋은 가 보네."


김치 볶음밥을 한 숟갈 뜬 J는 나에게 가까이 와보라고 한다. 상을 물린 J는 마구 내 상의를 헤치고 가슴을 만지려고 한다.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감각이 없다. 그래도 이 감각은 거부하고 싶지만 그 조차도 귀찮다. 작은 언쟁이 시작될 것이고 그 작은 언쟁은 나에게 설명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을 안겨줄 것이다. 감각을 사라지게 하자. 무감각의 관성. 감각이 없어지고 이 감각만이 남아 있는 것인지 이 감각으로 다른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몇 끼 째 먹은 간장 밥의 참기름 내가 내 입가에서 난다. 방범 창 밖의 세상은 극히 일부 밖에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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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어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멀리까지 가고 싶다. 다른 세상에. 내가 없는 세상에 도달하고 싶다. 하지만 눈을 뜨면 본능에 충실한 J가 배 위에 있을 뿐이다. 마구 헤쳐진 브래지어 사이로 내 젖가슴은 반만 눌린 채 형광등 불빛 아래 나와있다.


밤은 쉽게 가버린다. 밤이 되면 길 고양이들이 거리에 나온다. 쓰레기를 뒤지고 영역싸움을 하며 비명 소리를 낸다. 고양이가 들끓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나는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는 듯 눈을 감는다. 어둠의 영역이다. 이 어둠 속에서는 정지하고 있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로 여행한다. 무거운 몸은 반 지하를 떠나 어디든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영역에서 원하는 곳을 갔던 적은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으로 가게 된다. 오늘은 어디로 갈지. 달콤한 잠의 냄새가 난다. 이 곳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를 보니 뿌연 초록색이다. 내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 아마 수영을 해야 하나보다. 몸을 움직여 해류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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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고기다. 비늘이 하나하나 빠지고 나는 물고기로써의 생명을 하나하나 잃어간다. 주위의 바다 생명체들이 나를 본다. 뭔가 괴로운 느낌이다. 휘몰아 치는 물결이 한 곳에 머무르려는 나를 잡아 이끈다. 그러다가 나는 엄청난 힘에 의해 수면 위로 올라간다. 눈이 터질 것 같은 압력이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다. 초록색이 파란색으로 옮겨 간다. 하지만 빈혈이 일어 어지럽다. 누군가가 내 몸을 만지고 있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이 중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힘든 꿈과 원하지 않는 나의 중력. 크게 숨을 쉬어본다. 코로 숨을 씩씩 들이 마셨다가 뱉는다. 이 것이 거슬렸던지 J는 베개로 내 얼굴을 누른다. 비참한 순간이다. 나는 교환된다. 과연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아, 그래 내가 얻는 관계의 관성, 관계의 관성이 깨지는 것을 막아주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그것을 얻지만 나는 얼굴이 가려진 채로 몸 덩어리만 남는다. 나는 얼굴이 가려지고 나는 없어진다. 그리고 나의 감각들이 점점 사라진다. 이 속도의 관성 속에서 난 사라진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고 있는데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





더럽다.


아침이 되었다. 반 지하가 아닌 지하 700미터쯤 되는 곳에서 끌어올린 육신을 일으킨다. 오늘은 이력서를 수정 해 볼까, 영화를 볼까, 운동을 해 볼까 생각한다. 인터넷 창을 연다. 20대 취업률. 놀고 있는 인구 3만 명. 어떤 영화에서는 '요즘 20대가 지들 스펙 떨어져서 취업 못하는 줄 알어!!.'


깡패가 이야기한다. 면접장에 들어가 예쁘장한 여배우가 춤을 추고 면접관들이 비웃을 때 부터 참고 참고 참았다. 한계다. 마우스로 엑스를 누른다. 다시 정적. 20대 취업 준비생이 나오는 영화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 존재를 보는 순간 나는 발뒤꿈치를 미는 돌로 얼굴과 가슴을 문댄 것처럼 아프다. 아니, 아프지도 않다. 그저 외면할 뿐. 그 무엇으로도 이 절망에서 나를 이끌어 낼 수 없을 듯하다. 그 무엇도 내가 원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세상 누구도 나를 원하는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도 나를 두고 교환가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자기를 브랜드화 하세요. 본인의 SELLING POINT를 찾으셔야죠!'


한 숨이 새어 나온다. 커피가 떨어진 지 오래, 150원을 들고 골목에 있는 자판기로 가 블랙 커피를 뽑는다. 진한 담배 냄새가 나는 검은 블랙 커피를 바라본다. 시중에 유통되는 쓴 맛의 커피는 아닌 것 같다. 재개발지역 확정된 동네의 스산한 골목길에 오래된 자판기. 그 안에서 커피는 검게 검게 변했을 것이다. 찔끔 찔금 맛을 본다.


뱉고 싶을 만큼 쓰다. 썩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뱉지 않는다.


목구멍이 타들어갈 것 같다. 이 감각의 상실이 깊은 잠으로 이어 졌으면 좋겠다. 과연 이것은 감각의 상실인가. 커피를 다 마시자 머리를 쇠사슬로 묶고 여기저기서 날 흔드는 것 같은 두통이 찾아온다. 다시 밤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여긴 너무 밝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 무엇도 이 폐쇄된 사고 회로를 끊어 버릴 수 없다. J는 내게 보험 영업을 권했다. 보험 영업직은 교육에서부터 시작 하여 교육비까지 지원한다. 입사 순간 150만원 입금. 그 지원금액이 나는 부담스러웠다. 보험 영업이라 말 그대로 내가 믿지 않는 보험 가입을 권하며 보험 가입을 성사시킨 만큼 돈을 벌어들이는 것 아닌가 보험 이란 정말이지 무너지기 쉬운 삶의 한 단면을 거침없이 불안감으로 몰아 넣어 다달이 고객들에게 돈을 빼내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어긋난 생각이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면접에서 탈락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경제지 신문사설의 문장을 단문으로 만들어 외워봤다. 은행에서도 증권 상품을 그리고 보험상품을 판다. 파는 능력이 지금 나에게는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팔 수가 없다. 파는 행위는 나와 별개의 것이라는 느낌이다. 아니 내가 결코 해낼 수 없는 행위 같다. 그러니까 대학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 넣느라 학자금까지 신청해가면서 빚을 늘려나갔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나는 무엇인가 파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J 는 본인보다 스펙 좋은 네가 왜 이렇게 썩은 물처럼 고여 있는지 모르겠다며 문을 닫고 나갔다.


개새끼.


한때 J는 기타라면 영혼이라도 팔 것처럼 음악만 들어대던 사람이었다. 예술영화를 다운받아보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이냐고 묻던 사람이 이제는 100만원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어쩌구 하는 책을 쓴 사람의 강의에 가지 않는다면서 나를 힐난한다. 더 우울하고 어두우며 자신이 어둠이라 느끼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었다. 지금은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몇 백억의 부동산재벌이 된 그가 어두운 음악을 듣지 말고 항상 웃으며 씩씩하게 걸어야 하고 긍정의 말만을 해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그를 따라 하는 중이다. 내가 읽던 <자살론>을 집어서 던져버렸다. 나는 그러나 절대 긍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긍정을 해야 할 만큼 세상은 긍정하기가 어렵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래, 그러니까 나는 안되는거야.


"뭐해?

아 이 공무원 준비라는 것도 날나리 같고 엄마는 9시 뉴스에 청년 실업문제 얘기가 나오자 빨리 와서 뉴스 보라면서. 지금 너 얘기 한다고 밖에 나가서 강사라도 하면서 빨리 돈 벌어 오래.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지금 2과목은 아예 손도 대지 못했어.

아 정말 봄바람은 불어 샤랄라인데.

이 인생은 왜 이리 칙칙하니.

나는 너랑 달리 만날 엄마랑 있잖니. 엄마는 이제 여자 나이 이제 막판이다. 샤랄라한 인생도 다 가고 주가가 있을 나이 이제 막판이라며 막판이란 단어를 몇 번은 쓰잖아.

정말 비참해.

넌 그래도 괜찮아 보인다"


"그 때 봤다던 선은?"


나는 화제를 돌렸다.

"결국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선보러 나갔지. 나보다 나이도 많고 돈은 좀 버나 보던데. 정말 드라마처럼 배 나오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나와서 내가 취업 준비생이라고 하니까 인상을 찌푸리면서 태도가 확 변하는 거야. 직업 없는 거 빼고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할 게 없어 보였는데……."


평소에도 신세한탄을 늘어놓는 친구 K다. 아,너무 어렸을 때 보던 드라마랑 비슷하잖아. 뭐야. 말 끝을 흐리며 한탄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고음의 음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흔들렸다. 그리고 끝내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그 한탄이라는 판소리는 '너는 그래도'라는 추임새로 절정에 달했다.


"너는 그래도...

글을 잘 쓰잖아.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러워. 자소서가 100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너는 그래도..."


이것은 모욕인가. 어떤 의도 인지 알 수 없었다. 글 잘쓰는 사람이란 것은 교내 도서관 감상문 모집에서 최우수상을 탔다는 것으로 이뤄진 인식이었다. 그 전에는 글과 나는 별개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글 잘쓰는 사람의 자소서는 어디선가 이면지로 쓰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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