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호황이다

지난 주말 나에겐 아무일도 없었다

by moonbow

비극이 호황이다. 지난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가뭄지역엔 얼마 오지 않았다하니 그것도 애석한 일이다. 오랜만에 쓰고다니는 안경에는 김이 서리고 우산을 들고 다녀야 하니 피로가 더 쌓이는 것 같다.


나는 비가 오는 것이 좋다.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면 특유의 소리가 나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흐린 날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둠에 몸을 내맡기고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하지만 비오는 날 외출을 해야하는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지만 날씨를 좋아하고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 날씨를 탓하고 짜증을 내는 정도까지 이르는 것은 더한 피로감을 안겨준다. 날씨는 항상 변하고 365일 같은 날씨는 없다. 우리의 마음처럼. 다만 날씨에 대한 대비는 항상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이 났는데 이번 주에는 잊지 말고 꼭 보일러를 AS받아야겠다.


지난 주에는 열등감이 내 마음에 홍수였다. 그 물이 빠지자 슬픔이 또 다시 차오른다. 주말 내내 난 조금 기한을 늦은 것같은 완벽하지 않은 기획안을 보내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고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내 몸을 꿈동산 삼아 놀게끔하고 내 첫 사랑 하얀 고양이 라라의 눈의 염증을 걱정하며 보냈다. 연인이 와인을 사와 한 입 대자 피자가 먹고 싶어 라고 몇 번 노래를 부르고


'현기증 난단 말야.'란 말로 피자를 얻어 먹었다. 조건은 앞으로 3개월 이상 인스턴트를 먹지 않기로 한 약속.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 평화로울만큼 평화로웠고 일상적일만큼 일상적이었다. 아기 고양이 중 한 마리가 응아를 하면서 울길래 좀 짜(?) 주었더니 약간 변비기운이 감도는 덩을 쌌다. 11월이 어느 새 반이나 지나갔다는 것이 조금 걱정이 되었고 이번 달 월세와 카드값이 걱정이 되었으며 이번 주에 해가기로 한 과제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일도 내겐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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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계속 비가 왔을 뿐이었다. 비가 계속 왔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면서도 문득 SNS 세상을 열어 보았다. 두 눈을 감고 싶을 만큼 끔직하다. 테러와 시위와 물대포. 캡사이신을 넣었다고 한다. 나는 안다. 내가 세상을 보는 한 통로인 SNS의 팔로워들과 이웃들은 나와 어느 정도는 다 비슷한 공통점이 있는 이웃들이다. 그들이 전하고 공유하는 의견과 사실과 진실은 존경하는 우리 엄마 아빠가 보는 TV 속 세상과는 다르다. 너무도 다르다.


난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정치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계속 내가 울고 있다고 느낀다. 내 몸은 계속 작게 떨리며 흐느끼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슬픔, 그리고 기도. 그리고 그 모든 슬픔 속에 잠수하기. 깊이 잠수하기.


선물을 사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샀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은품으로 준다는 노트와 컵이 탐났다. 특히 노트다. 아직 몇 페이지 읽지 않았지만 난 또 한 글자 한 글자에 흐느끼는 나를 느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세상 모르는 아깽이 두 마리와 섬세하고 무표정하지만 사랑을 바라는 하얀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하는 평화로운 일상이다. 그 극적인 대비 속에서 난 한편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또 동시에 그럴 수록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것들을 더 만끽하고 기뻐해야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느낀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싸지만 나를 풍족하게 해주는 바나나와 고구마와 방울토마토와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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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지난 목요일 특가 상품인 파리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옆에 있던 친구가

'진짜 가려고? 우어 올~' 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친구는 외국어에 능통하며 외국에 산 경험이 있으며 비교적 자주 여행을 하는 친구다. 외국 친구도 많다. 같은 외국어 전공자임에도 배경은 사뭇 다르다. 나는 토종.


지난 주는 열등감의 주간이었기때문에 그 친구의 사소한 모든 것들이 날 비웃거나 무시하는 것같았다. 한 번 느낀 약간의 스크래치가 아니라 여러 번 느낀 바 있어 나는 나로써는 해본 적없는 일을 한다. 20대 때는 그런 모든 순간을 참았다. 말하는 순간 나만 이상해지거나 꼬인 사람으로 평가받거나 몰이해의 순간에 나혼자 내동댕이 쳐지거나 했기때문에. 아무리 참고 참아도 그런 것이 계속 쌓여간 한 때 많은 시간을 나눴던 사람과는 지금 한 명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지 않다. 그저 마주치기도 싫다. 그러나 이젠 관계가 그렇게 어그러질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표현을 한다.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표출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내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못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기때문에. 긴 장문의 카톡 메시지를 보낸다. 무시 당한 것 같았다고...... 친구는 많이 미안해했다. 서로의 섬세함의 온도가 다르기때문에 앞으로 스크래치를 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치는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꽉차 넘치는 감정이 해소되었으므로 또 이 작은 문턱을 넘었으므로 이 관계는 심하게 어그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관계라는 것은 예측불허라 뭐라 말하긴 그렇다)


그 며칠 후 주말에 파리에 테러가 났고 그 친구가 나에게 파리에 가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 전에 그 친구의 오래된 벗인 강아지가 죽었다. 나도 그의 집에서 그 강아지와 함께 빈 집을 지킨 적이 있다. 잠자듯 떠났다고 하니 복받은 죽음의 순간이지만 하지만 '호상'이라고 하는 말을 애도하는 입장에서는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파리에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지만 갑자기 사라진 감정이 다시 불쑥 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데 가보고 죽자,라는 결연한 의지로 무리해서 지른 표였기때문에.


여행에 대한 갈망과 테러의 안타까움과 어쩔 수 없는 비극과 또 타인의 죽음에도 당장엔 내 여행계획이 걱정되는 이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마음과.........


이 어지러운 울음은 계속 되었다.

한 농민이 위중하다. 아버지 나이 대다.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그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던 듯 하다.

공권력은 국민이 쥐어준 것이며 무기를 든 사람보다는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이 약하기때문에 항상 공권력의 시행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울 수도 없다. 더 이상.


나는 2008년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덕수궁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관람객을 들이지 않는 빈 궁궐에서 군화발 소리와 시위 소리를 동시에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전에 시청광장에서 이뤄지던 수많은 행사성 노래와 멘트를 들었다. 퇴근을 해야 했는데 후문은 미국대사관저여서 통제가 완벽히 되었고 대한문 밖으로 나갔는데 의경에게 둘러싸여 난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의경들 사진을 찍었다. 의경들 앞에 가까이 섰는데 그네들의 뽀얀 피부와 솜털이 슬펐다. 너무도 예쁘장한 의경이 있었다. 그 때는 나도 좀 젊은 여자였으므로 그 의경이 나에게 눈길 한 번 안주는 것에 대해서 섭섭했었고 또 그것이 비극적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시위 하는 분 중 한 명의 도움을 받아 나갔다. 다른 시청 주변은 너무도 고요했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가던 중 연기가 너무 심하게 나서 옆을 보니 줄을 맞춰 앉아있는 의경들이 단체로 담배를 푹푹 피고 있었다. 그 장면이 나는 참 충격적이었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찍고 싶었지만 난 그런 분위기 자체에 압도되어 내가 고양이였거나 강아지였다면 꼬리가 배까지 말려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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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스럽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중독과 광기에 휘말린 사람들이 하염없이 가엾다.


그리고 분노의 원인을 해결해 갈 시간과 여건이 안되는 젊은이들의 절망과 쉽게 극단으로 빠져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는 죄를 짓게 되는 그 영혼들이 한없이 연약하며 고통에 빠져있었음이 가엾다.


시민들을 게임하듯 쉽게 해치워버리는 그들의 뇌. 사이코패스적인 무공감의 마음. 그 권력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공포에 마비된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잘 못.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도 충격적이지만 그런 테러에 가까운 비극이 일상적인 곳이 세계엔 많을 것이다. 아프리카, 중동, 북한....어쩌면 여기. 어딘가.





praying for the all suffering







모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