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 가장 맛있는 밥상

엄마는 자다 깨서 일어나 날 안아줬다

by moonbow

왜 이리 늦게 왔냐면서

추위에 밥도 못 먹고 떨다 집에 들어온 나는

굳은 몸이 한 순간에 녹는 것 같았다


추워서 화장실도 가지 않았던 10살의 나는

화장실에 가 오랫동안 참았던 오줌을 싸면서

청바지 주머니에 있던 종이 조각을 버리려고 꺼냈다


토요일 하루 종일 굶으면서 주머니에서 만지작 거리던

종이조각이었다 당연히 껌종이겠지, 라고 생각한 난

변기 위에 앉아서 펄쩍 뛸 뻔했다

그 종이는...

만원짜리가 아니었겠는가


허탈하지만 난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초라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강력한 따뜻함을 담고 있는 밥상이었다.




나는 10살이었다.

그 때의 담임 선생님께서는 유별났다.

그 당시의 나는 1등 병에 걸려있었다. 학교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하고 다른 반보다 우리 반이 더 시험을 잘 봐야 하고 내가 점수를 가장 잘 받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증병이었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서도 병에 걸려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의 시험 성적이 뭐 그리 중요했던 지

다른 반과 비교하는 시험 평균 성적이 떨어지면 단체 기합을 시켰고

초겨울이 되어가던 그 때 토요일날 점심을 싸오라며 하루 종일 보충 수업을 할 거라고 했다.


그 때 당시는 몰랐지만 엄마는 그 전부터 오랫동안 아파왔던 것 같다.

점심을 싸가야 한다고 말을 못 했거나 아니면 까먹었던 것 같다. 아마도 까먹었겠지.


그 날따라 유독 배가 고파, 아니면 아침을 먹고 가라는 엄마를 뿌리치고 늦잠 자고 그냥 학교로 뛰어갔겠지.

난방을 아직 하지 않았던 교실이 너무도 차갑고 속에서는 계속 꼬르륵 소리가 났고 더 추워졌다.

근데 청소를 끝내고 수업을 한다는 게 아닌가. 5시까지 수업을 하겠다는 엄포에 나는 진짜로 절망했다.

돈도 없고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꺼내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저절로 소외되어

그냥 안먹겠다고 했다.

구멍가게에 가자고 했던 친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엔 철저히 나 혼자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돈 300원도 없는데 누가 가자고 하면 창피하니까

아픈 척 엎드려 있었거나 했던 것도 같다.


한 시간인가 청소와 점심시간으로 쓰라고 한 시간은 참 길었다.

추워서 청바지에 어름장같은 손을 넣고 껌종이일 게 분명한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아닌척하면서 엄청 참았다. 배가 고팠지만 아픈 척 하며 엎드렸다가

불쌍하게 볼까봐 나머지 수업 시간엔 더 오버하며 일등병 중증 상태를 보였던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선생님께서 3시 정도에 수업을 끝내 주셨던 것 같다.

내 어마무시한 각오와는 달리 금방 수업이 끝나 나는 나는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의 부시시한 모습과 잠에서 깬 모습이 너무 반가웠다.

잠에서 방금 깬 따뜻한 몸과 엄마 품이 너무 따뜻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질문에 수업했다고

다른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왔다고 말을 했던가 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속상해 했던 걸로 기억하는 바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저 짐작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엄마는 아파서, 게다가 저녁 시간도 아니었고 밥을 하길 기다릴만한 상황이 아니었기때문에

먹다 거의 없어진 김치 청국장과 찬밥을 내주었다.

다른 반찬도 없었다.

작년에 담아 군내가 나기 시작하는 총각김치를 씻어 넣어 끓인 청국장.

두부도 남지 않고 버릴까 말까 하던 애매하게 남아있던 찌개와 밥.

데우다 보니 쫄여진 청국장에 찬 밥이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밥이었고

가장 따뜻한 밥이었다. 아마 굶다가 배가 고픈 상황이어서 기억에 남는 밥이었겠지만

그때는 가진게 정말 없었고 손님들이 오면

찬 밥을 끓여서 동치미 무와 김치 한 사발로 다들 너무 맛있었다며 두고 두고 이야기를 했던

엄마의 손 맛과 푸근함이었기때문이리라.





그렇게 정신없이 먹는 나를 엄마는 미안함 반, 사랑 반으로 쳐다봐 주셨다.

아마 온전히 엄마의 애정을 독식할 수 있었던 순간 중에 하나였기때문에

배부르고 따뜻한 기억이다.


마지막까지 뚝배기가 구멍나도록 먹을 때까지 엄마는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요즘 들어 청국장이 먹고 싶어진다 싶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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